[理知논술/이슈&이슈]진정한 제복의 멋

  • 입력 2007년 6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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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추리닝’이 바뀌면 군인의 자부심 살아날까?

나폴레옹은 치열한 전투가 있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사열을 했다. 병사들은 모두 반짝이게 구두를 닦고, 더러워진 군복을 깨끗이 빨아 다려 입어야 했다. 유능한 장수인 나폴레옹이 지치고 피곤한 병사들의 마음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왜 사열을 강조했을까?

군대의 힘은 제복(uniform)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각 잡힌 멋진 군복은 순박한 농부를 용감한 전사로 바꾸어 놓는다. 번쩍거리는 장식과 화려한 훈장은 자신들이 쌓은 업적을 한눈에 보여준다.

단결과 조직력을 강조하는 집단일수록 제복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은 연습할 때조차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각 사람의 차이점은 제복 뒤로 감춰둔다. 제복이 나타내는 집단의 영광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준다.

육군이 병사들의 운동복을 바꾼단다. 촌스러운 주황색 추리닝을 대신해 첨단 재료로 만든 세련된 운동복을 만든다고 한다. 제복은 일단 멋있어야 하는 법, 잘 된 일이다. 제복을 입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조직도 힘을 받을 터다.

하지만 제복의 멋은 디자인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영국 버킹엄 궁을 지키는 근위병의 복장을 떠올려 보라. 언뜻 보면 군인으로서는 무척 괴상한 차림새다. 곰 털로 만든 사람 키만 한 모자에, 빨갛고 검은 색이 대비되는 군복은 유치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그런 차림새를 한 군인이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그럼에도 영국 근위병들은 멋있다. 영국 관광안내 책자에는 이들의 모습이 빠지는 법이 없다.

반면, 죄수들은 어떤가? 아무리 디자인이 멋지고 값비싼 죄수복이라 해도 이를 입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제복의 힘은 ‘아우라(aura·발산하는 기운)’에서 나온다. 전통과 명예와 자부심이 살아 있는 집단에서라면, 아무리 초라한 단체복도 멋진 제복처럼 보인다.

멋진 새 운동복으로 군 생활을 시작할 청년들이 조국의 군대를 더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이런 바람은 헛헛하기만 하다. 원래 우리 군은 새로운 함선의 명칭을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분들의 이름을 따서 지으려 했단다. 그럼에도 이 분들이 목숨 바쳐 지킨 조국은, 자신들을 죽인 침략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복에 대한 사랑이 나올 수 있을까? 육군의 날렵한 새 운동복이 주황색 추리닝만큼이나 초라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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