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핵심기술 유출 막는 방법은?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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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맛 집에는 나름의 비법이 있다. 잘 나가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첨단기술은 기업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몇몇 기술자가 자동차, LCD 등의 핵심기술을 외국에 넘기려 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단다. 첨단 제품을 만드는 데는 숱한 사람이 매달리기 마련이고, 그럴수록 회사의 기밀을 지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더구나 좋은 조건을 따라 외국으로 떠나는 핵심 인재가많다. 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철학자 라캉은 관습이란 ‘강제를 자유롭게 따를 자유’라고 말한다. 아주 가까운 친구와의 승진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보자. 승리를 거둔 내가 친구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친구도 마찬가지로, 따뜻한 제의를 부드럽게 밀어내며 다시금 나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만약 내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하기 어려울 터다. 제안을 덥석 받았을 때 친구가 받을 대접도 마찬가지다. 관습은 선택을 옭죄고 사회가 원하는 결론 쪽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라캉을 따라 회사 기밀을 내다 파는 사람들을 설명해보자. 자신의 몸값을 많이 올릴 수 있다 해도, 대부분의 기술자는 몸담은 직장과 조국에 등 돌릴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이처럼 관습은 우리 사회와 기업을 지키도록 ‘자유롭게 강제하는’ 힘이다.

하지만 지금의 기업문화에서 무작정 충성을 바칠 사람이 많을까? ‘평생직장’은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대한민국의 기업’이라는 표현도 멋쩍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디자인하고, 중국 공장에서 만든 뒤에, 다시 유럽에 판매되는 자동차는 어느 나라 제품일까? 애국심은 기업에 충성하도록 만든 힘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첨단기술과 인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영의 신’이라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에게 그 답을 들어보자. 노동자들이 철새처럼 떠다니던 19세기 일본에서 기업가들은 언제고 떠날 노동자들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쓰시타는 아버지가 자식을 버리지 않듯, 회사는 자신의 직원들을 끝까지 챙겨야 한다고 믿었다. ‘종신고용’은 이런 믿음 속에서 굳어졌다. 라캉이 말하는 ‘관습’은 이처럼 따뜻하고 두터운 인간관계와 믿음 속에서만 힘을 쓴다.

정리해고가 곧 ‘경영합리화’로 통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믿음과 충성이 없는 기업이 과연 ‘합리적’일 수 있을까? 팔려 나가는 핵심 기술들은 보살핌이 사라진 직장의 씁쓸한 뒷모습일 뿐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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