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막일해 매출 300억대 회사 일궜는데…조선족 사장 강제추방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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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인 I개발 사장 김기덕(53) 씨는 한중 수교 전인 1991년 한국으로 왔다. 중국에서 국영 제지업체를 운영했던 김 씨는 먼 친척의 초청으로 입국했다가 건설업에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불법체류자로 눌러앉았다.

막일꾼으로 시작한 그는 현장사무소 지하실에서 먹고 자며 일을 배웠다. 독학으로 도면 보는 법을 익히고 현장 작업을 이끄는 그에게 사장은 곧 관리자 역할을 맡겼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임금이 체불될 때도 많았지만 그는 묵묵히 버텼다.

김 씨는 다니던 회사가 2003년 부도 위기에 몰리자 모아두었던 돈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돈을 끌어 모아 체납 세금 등 7억 원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회사를 인수했다. 김 씨가 인수할 때 연간 수주액 80억 원 미만이었던 회사는 4년 새 300억 원대 규모의 업체로 성장했다. 올해 들어서도 이미 700채 규모의 아파트 공사를 맡는 등 180억 원을 수주했다.

그러나 김 씨는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다. I개발을 인수할 때 브로커를 통해 허위서류로 호적을 만든 뒤 국적을 획득한 것이 지난해 6월 주변 사람의 신고로 뒤늦게 들통 났기 때문이다. 적발 후 3개월간 구류를 살았던 김 씨는 서울고등법원에서 1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고 이달 15일 대법원 항고가 기각돼 유죄가 확정됐다. 호적은 말소되고 불법체류자 신분이 돼 강제출국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김 씨가 출국하면 회사의 앞길은 막연해진다. 12명의 직원과 그의 회사와 주로 계약해 일해 온 일용노동자 300∼400명의 일자리도 위태로워진다. 지난해 김 씨가 구류를 사는 석 달 동안 회사는 3억5000만 원의 손실을 입었다.

김 씨는 “거짓으로 국적을 획득한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체납 세금을 대신 갚고, 사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등 한국 사회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이곳에 남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2005년 한 해만 법인세와 근로소득세 등으로 김 씨는 4억여 원의 세금을 냈다.

김 씨처럼 1992년 한중 수교 전 입국한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은 1000여 명. 정부는 2005년 한시적 조치로 국내에 호적이 남아 있거나 사촌 이내 친척이 있는 경우 국적을 회복시켜 줬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200여 명은 여전히 불법체류 상태다. 15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며 생활기반을 다진 이들은 중국 내 기반이 이미 없어져 돌아가 살 길이 막막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대표해 국적 회복 소송을 벌이고 있는 2차소송추진회 진원근(54) 회장은 “국회를 상대로 특별법 입법 청원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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