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손창섭 ‘잉여인간’

  • 입력 2007년 5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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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剩餘)’라는 말을 아세요? 이 말은 사전에서 ‘쓰고 난 나머지’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용돈을 넉넉히 받아서 사고 싶은 것을 샀는데도 돈이 남았다면 그 돈은 ‘잉여’된 돈이 되겠죠. 기운이 펄펄 넘쳐 무거운 짐을 잔뜩 옮기고도 힘이 남았다면 이것은 ‘잉여’된 힘이 될 거고요. 이렇게 보니 ‘잉여’란 것은 사람의 마음을 무척 넉넉하게 해 주는 것 같네요. 모자란 것이 아니라 많아서 남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많아서 남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닙니다. 농부들이 힘들게 수확한 농산물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제값보다 훨씬 못한 가격으로 팔아넘기거나 심지어 썩혀버려야 하니까 말이에요. ‘잉여’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필요하다’라는 의미도 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잉여 인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남은 인간’일까요? 뭔가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불필요한 인간’이라는 해석은 어떤가요? 유쾌하지는 않지만 좀 더 의미가 분명해진 것 같네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잉여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만기는 치과의사입니다. 그는 얼굴도 잘생겼고 어려운 사람들도 잘 도와준답니다. 가족들을 성심성의껏 뒷바라지하고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자상한 남편이기도 해요. 정말 ‘완소남’이 아닐 수 없군요.

그러나 그의 친구 봉우와 익준은 만기와 무척 다릅니다. 봉우는 ‘산송장’ 같은 인간입니다. 매일같이 만기의 치과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꾸벅꾸벅 졸기만 하거든요. 익준은 신문에 실린 사회문제에 대해 몹시 흥분하는 ‘비분강개형’ 인간이랍니다. 하지만 늘 말뿐이죠.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해 병든 아내가 죽어도 장례조차 제 손으로 치러 주지 못하거든요. 그는 친구 만기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인간입니다. 작가는 이 둘을 ‘잉여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잉여인간이 아닌 만기는 왜 나오는 걸까요?

만기는 그 완벽함 때문인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습니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봉우와 익준에게도 신의(信義)를 얻고 있죠. 심지어 처제의 사랑도 받고, 간호사의 사랑도 받고, 친구 봉우 아내의 사랑까지 받습니다. 존경과 감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랑’을 말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만기는 과연 행복할까요?

봉우와 익준은 제 몫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말 그대로 ‘불필요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내지 못하는 책임을 만기는 떠안고 있습니다. 만기가 받는 사랑 역시 이런 책임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무겁고, 그 책임감으로 괴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만기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100%의 역할밖에 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기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가 200%, 300%의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합니다. 슈퍼맨이 되길 바라는 거죠. 여러분, 여러분은 만기처럼 ‘완소남’이 되고 싶은가요? 어마어마한 책임까지 모두 떠안으면서 말이죠. 아마도 쉽게 선택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들이 사는 시대는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입니다. 이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잉여인간들이 존재하였죠. 그들 중 일부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적절한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만기’들이 그 역할을 떠안아야 했죠. 하지만 그들은 슈퍼맨이 아니었기에 무거운 책임감에 지쳤고, 수많은 ‘잉여인간’은 실의에 빠져 ‘산송장’처럼 살아가야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잉여인간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혹시 여러분 스스로 ‘나는 불필요한 인간이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혹은 주변의 상황이 여러분을 무기력하게 만든 적은 없나요?

어쩌면 현대는 또 다른 형태의 잉여인간이 만들어지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박진선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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