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인천AG]424개 금메달 걸고 ‘16일 불꽃경쟁’

  • 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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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아경기 이렇게 치른다

“인천을 찾은 아시아 각국 선수단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자신의 기량을 맘껏 과시해 꼭 좋은 성적 내길 빌겠습니다.”

2014년 9월 인천 문학경기장. 인천 시장의 환영사 및 개회 선언과 함께 40억 아시아인의 대축제인 제17회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의 막이 오른다. 아시아 각국에서 온 선수들은 37개 종목 424개(2006년 카타르 도하대회 기준)의 금메달을 놓고 16일간 불꽃 경쟁을 벌인다.

○ 문학경기장, 47개 금 놓고 육상 축구결승전 펼쳐

2002년 6월 14일 열린 한일월드컵 D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박지성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유럽의 거함 포르투갈을 꺾고 한국이 2승 1무로 사상 첫 16강에 오른 ‘약속의 땅’ 인천 문학경기장. 이곳이 7년 뒤 아시아 45개국 1만2000여 명의 선수들이 모여 스포츠 대제전을 벌이는 메인스타디움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문학경기장은 47개의 금메달이 걸린 육상과 축구 결승전이 열린다. 아시아의 ‘미녀 새’와 ‘황색 탄환’, ‘인간 기관차’ 등의 명예를 놓고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3강이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한국의 남녀 마라톤 건각이 1위로 결승선인 문학경기장으로 골인하는 모습도 기대된다.

사실 대회는 개회 직전 축구 예선으로 시작한다. 보통 5일 전에 축구 예선을 시작하는 게 관례. 축구는 남동종합경기장에서 예선을 벌인다. 그리고 3, 4위전과 결승전은 월드컵 4강 신화의 불을 지폈던 추억의 장소 문학경기장에서 열린다. 축구팬들은 남한과 북한이 결승에서 만나 남북 대결이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축구 결승은 폐회식에 앞서 제일 마지막 경기로 펼쳐진다. 남과 북이 결승에서 만난다든지 남북 단일팀으로 결승에 올라 우승을 이끈다면 세계적인 빅뉴스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인천시 7년간 지원한 약소국 선수들도 참가

2002년 부산대회 때 ‘미녀 응원단’을 선수단과 함께 파견했던 북한은 이번에도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단일팀이 출전해 금메달을 따내 인천 하늘에 ‘통일의 상징’ 한반도기를 펄럭이게 할 가능성도 높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인천의 스포츠 약소국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7년간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각국을 대표해 뛰는 것이다. 인천은 아시아의 절반이 넘는 스포츠 약소국에 지도자 파견, 장비 및 시설 지원,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스포츠 아카데미 설립 등에 200억 원을 투자한다고 선언했다. 아시아 스포츠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야구장이 있는 문학경기장은 체육관과 실내수영장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라 종합스포츠센터로 탈바꿈한다. 육상 축구 외에 야구, 수영, 역도경기가 이곳 문학 벌에서 펼쳐진다.

대한민국의 상징 태권도는 송도종합경기장 내 체육관에서 열린다. 송도종합경기장에서는 한국이 강한 럭비를 포함해 세팍타크로, 테니스 경기가 열린다. 카누와 조정, 사격, 승마, 수구, 하키, 우슈, 탁구 등은 서구 경서동 ‘드림파크’와 공촌동에 들어서는 서구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다. 사이클, 양궁, 인라인스케이트, 배드민턴 경기는 서운종합경기장에서, 축구 예선, 볼링, 스쿼시, 핸드볼은 남동종합경기장에서 각각 열린다.

○ 수원 안양 고양 등 인근도시 경기장 활용 비용 줄여

인천시는 첨단체육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한편 부천과 수원, 안양, 고양, 안산 등 30분 거리에 있는 인근 도시 경기장을 충분히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다른 도시와의 화합도 도모할 계획이다.

한국은 1951년 창설된 아시아경기에 6·25전쟁으로 1회 때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2회 대회부터 계속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왔다. 종합우승 없이 준우승 7차례, 3위 5차례, 4위와 5위 각 한 차례를 기록했다. 홈에서 열리는 만큼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에 오르는 게 한국의 목표. 중국이 1위를 차지할 것이 확실하며 2위를 놓고 ‘영원한 라이벌’ 한국과 일본이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1강 2중

중국 독주… 한국-일본 2위 다툼

아시아 스포츠는 흔히 ‘한중일 삼국지’로 대변되어 왔다.

한국은 1954년 마닐라 아시아경기 3위를 시작으로 지난해 도하대회 2위까지 꾸준히 2∼4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1978년 방콕 대회까지 종합우승을 휩쓸다 1982년 뉴델리대회에서 중국에 처음으로 선두를 내줬고 1998년 방콕대회부터는 2위 자리마저 한국에 내줬다.

‘한중일 삼국지’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이런 표현은 점점 쓰기 어려워질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중국의 독주에 한국과 일본이 2위를 놓고 다투는 형국이기 때문.

중국 스포츠의 급속한 발전은 기초 종목 육상과 수영의 강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시아 3국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체조, 사격, 양궁, 유도, 레슬링, 태권도 등에서 주로 메달을 따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왔다. 그러나 중국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황색 탄환’ 류샹이 남자 허들 110m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육상에서도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육상과 수영의 아시아기록과 세계기록(표 참조)에는 아직 큰 격차가 있다.

일본은 수영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스즈키 다구치가 배영 100m에서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줬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기타지마 고스케가 남자 평영 100m와 200m에서 금메달 2개를 목에 거는 등 3개의 금메달을 땄다.

한국은 박태환이 3월 호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자유형(400m)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첫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기초 종목의 아시아, 세계 기록 비교
종목아시아 기록세계 기록
육상100m10초00(일본)9초77(미국 등)
200m20초03(일본)19초32(미국)
400m44초56(오만)43초18(미국)
110m 허들12초88(중국)12초88(중국)
높이뛰기2m39(중국)2m45(쿠바)
멀리뛰기8m48(사우디)8m95(미국)
창던지기87m60(일본)98m48(체코)
마라톤2시간6분16초(일본)2시간4분55초(케냐)
수영자유형 50m22초18(일본)21초64(러시아)
자유형 100m49초06(중국)47초84(네덜란드)
자유형 200m1분46초73(한국)1분43초86(미국)
자유형 400m3분44초30(한국)3분40초08(호주)
자유형 1500m14분55초03(한국)14분34초56(호주)
평영 200m2분9초97(일본)2분8초50(미국)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1986년 서울대회 건국후 첫 국제종합대회… 국제적 위상 높여

2002년 부산대회 北대규모 선수 - 응원단 참가 ‘남북화합 물꼬’

한국은 인천이 2014년 대회 유치에 성공하기 전까지 두 차례의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해 훌륭하게 치러냈다. 1986년 서울대회와 2002년 부산대회를 통해 한국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1986년 서울대회는 한국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치른 국제 종합대회였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1988년 올림픽대회 유치에 성공했지만 세계는 과연 분단국이자 약소국인 한국이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올림픽 2년 전에 개최된 서울 아시아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러냄에 따라 이런 의구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1986년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린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에는 27개국에서 총 4839명이 참가해 아시아인의 우정을 나눴다.

서울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아시아의 평화를 더욱 굳건히 했다는 것. 1950년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중국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해 서울 한복판에서 선전을 펼친 끝에 종합 1위에 올랐다. 당시 참가를 거부한 북한은 연일 선전 공세를 펼쳤지만 공산국가의 대표 주자인 중국의 참여로 한국이 더는 이데올로기의 싸움터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증명했다.

더구나 이 대회엔 당시 7년 전쟁 중이던 이란과 이라크도 참가했다. 전통적으로 레슬링 강국인 두 나라는 레슬링 10체급 중 4체급 결승에서 격돌했다. 모두 이란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란 선수들은 경기 후 이라크 선수들을 격려하는 등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중국에 1개 모자란 93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1966년 방콕대회 이후 20년 만에 종합 2위에 올라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2002년 부산대회는 1994년 일본 히로시마대회 이후 두 번째로 국가의 수도가 아닌 도시에서 열린 대회였다.

서울대회가 중국의 참여로 이데올로기 대결 구도를 척결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 16년 뒤 개최된 부산대회는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해 남북 대결 구도를 스포츠라는 훌륭한 장치를 통해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대회에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한 동티모르를 포함해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44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했다.

부산대회는 백두산 성화 채화와 남북 선수단의 한반도기를 앞세운 공동 입장으로 남북 화합의 큰 물꼬를 텄다.

부산대회는 경제적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부산은 아시아경기 개최를 통해 10조4000억 원에 이르는 생산 유발 효과와 27만2000명의 고용 효과를 누렸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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