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이석행위원장 “중앙 차원 파업 자제… 어떤 경우라도 대화”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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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11일 오후 경북 경산시 경상병원에서 이 병원 노조 간부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지도부의 올해 투쟁방침과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산=이은우  기자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11일 오후 경북 경산시 경상병원에서 이 병원 노조 간부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지도부의 올해 투쟁방침과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산=이은우 기자
11일 오전 7시 30분 경북 경산시 한국조폐공사 경산공장 앞.

자그만 체구의 중년 남자가 출근하는 직원들과 악수하며 연방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현장 대장정’에 나선 민주노총 이석행(48) 위원장이다. 그는 전날 경총 회장과 간담회를 마치고 오전 1시에 출발해 이날 아침 경산공장에 도착했다.

1월 27일 위원장에 당선된 그가 위기의 민주노총에 내놓은 해답은 현장대장정.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지도부와 현장 근로자의 사이를 좁혀야만 민주노총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파업을 위한 파업은 하지 않겠다’ ‘역량이 없는데 파업하는 것은 객기다’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

위원장 당선 이후 그가 한 말들이다. 기존 투쟁에 대한 반성은 현장에서도 여전했다.

이 위원장은 경산공장 근로자들에게 “지난해 파업은 ‘금속동창회’였어요. 지도부와 일부 금속연맹 사람들만의 파업이란 뜻입니다. 앞으로 중앙 차원의 파업은 자제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 이후 정부 재계 등과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17일에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만났다. 노동부 기획예산처 건설교통부 보건복지부 장관들과 잇달아 만나 민주노총 사무총장과 각 부처 실무자 간 정례 대화 채널을 마련했다. 재계 오너와의 대화도 제의한 상태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맡는 동안 어떤 경우라도 대화는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7월경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만나기로 했다”며 “LG그룹에서는 회장과 면담 대신 경총 회장과 대화를 하라고 해서 회장과의 면담을 다시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3월 말부터 인천 포항 대구 등을 거쳐 현장 대장정을 하고 있다. 20일 남짓한 기간 중 현장 방문에서 그는 ‘2010년 위기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외면하고 해외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는 3년 내 대규모 구조조정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쌍용자동차는 이미 중국으로 넘어갔고 기아자동차의 가동률도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우려는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인 현대자동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위원장은 “현대차는 인도 중국 등 해외에만 공장을 짓고 있다”며 “게다가 외제차 수입은 계속 늘고 있어 3년 내지 5년 이내에 현대차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자동차 등 제조업 공동화 위기의 해법으로 종합적인 경쟁력 향상을 꼽았다.

이 위원장은 “해당 기업 노사가 알아서 해야 한다. 자동차업체 노조위원장들과 대화를 해봤는데 말 못할 어려움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몽구 회장 면담 때 국내 투자 확대와 해외 투자 자제 등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산공장 방문을 마치고 인근 청구재활원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 위원장은 “내 월급이 얼마인 줄 알아요? 한번 맞혀 보세요”라고 기자에게 제안했다.

그는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내 월급은 156만 원”이라고 했다. 현대차 노조 예산을 얘기했더니 이 위원장은 “거기야 부자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통상, 연금 등 각 분야에 대해 민주노총에 전문가들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그는 공감을 표시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 구성원들이) 한쪽으로만 활동한 사람들이라 실물감각이 없다”며 “100명 규모의 다양한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로 민주노총 자문단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현장 노조 간부들과의 간담회에서 그는 ‘출신 성분’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정부와의 허니문으로 보인다’ ‘이석행 지도부의 배경이 뭐냐’ ‘온건파냐’ 등이었다.

이 위원장은 이런 질문에 자신의 파업 및 투옥 경력을 소개하며 “온건파인 건 틀림없지만 항상 온건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행보에 대해 강경파 지도부의 반발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현장의 여론은 다르다”라고 둘러서 얘기했다.

현장 노조의 한 간부는 “현장의 분위기는 온건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직선제(현재는 대의원에 의한 간선제)로 바뀌면 강경파는 위원장을 배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마련 중인 비정규직법의 세부 내용과 관련해 “비정규직 증가를 그대로 두고 보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그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직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나 노동시장 여건 등이 취약해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한미 FTA 국회 비준 반대 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장 방문에서 만난 한 노조 간부는 “솔직히 한미 FTA가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다. 반대는 지도부에서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변화는 여전히 진행형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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