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2014아시아경기 유치]과거 서울 - 부산대회 어떻게 치렀나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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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그동안 두 차례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해 훌륭하게 치러 냈다. 1986년 서울 대회와 2002년 부산 대회를 통해 한국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서울 대회는 한국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치른 국제 종합대회였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1988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지만 세계는 과연 분단국이자 약소국인 한국이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올림픽 2년 전에 개최된 서울 아시아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러 냄으로써 이런 의구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1986년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린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에는 27개국에서 선수 494명을 비롯해 총 4839명이 참가해 아시아인의 우정을 나눴다.

서울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아시아의 평화를 더욱 굳건히 했다는 것. 1950년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중국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해 서울 한복판에서 선전을 펼친 끝에 종합 1위에 올랐다. 당시 참가를 거부한 북한은 연일 선전 공세를 펼쳤지만 공산국가의 대표적 주자인 중국의 참여로 한국이 이젠 이데올로기의 싸움터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증명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중국에 1개 모자란 93개의 금메달을 따 내며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20년 만에 종합 2위에 올라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2002년 부산 대회는 1994년 일본 히로시마 대회에 이어 국가의 수도가 아닌 도시에서 열린 두 번째 대회였다.

서울 대회가 중국의 참여로 이데올로기 대결 구도를 척결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 16년 뒤 개최된 부산 대회는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해 남북 대결 구도를 스포츠라는 훌륭한 장치를 통해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대회에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한 동티모르를 포함해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44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했다.

부산 대회는 백두산 성화 채화와 남북 선수단의 한반도기를 앞세운 공동 입장으로 남북 화합의 물꼬를 텄다.

대규모 선수단의 파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금메달 9개로 종합 9위에 머문 점이 아쉽지만 한국은 금메달 96개로 중국(150개)에 이어 일본을 누르고 1998년 방콕 대회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부산 대회는 경제적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부산은 아시아경기 개최를 통해 10조4000억 원에 이르는 생산 유발 효과와 27만2000명의 고용 효과를 누렸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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