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법률 시장 개방’ 양심에는 국경이 없다?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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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열강이 식민지에 진출할 때는 지리학자와 선교사가 제일 먼저 들어갔다. 그곳의 지리와 풍습을 먼저 알아야 하니 지리학자는 큰 도움이 되었을 터다. 선교사는 ‘코드를 맞추는’ 역할을 했다. 종교가 같은 사람끼리는 대화가 훨씬 잘 통하는 법이다. 한 사람씩 개종시킬수록 자기네 문화가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커진다.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조율하는 데는 종교만 한 것이 없다.

16세기 대항해 시대 선교사들이 맡던 조율의 역할을 지금은 법률가들이 한다. 민감하고 조정이 안 되는 일일수록 다툼이 법정까지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법정에서는 서로 간의 문화와 이해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때 둘 사이를 조율할 법이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어떤 법이 필요하고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의견을 모을수록 두 나라의 문화와 정서는 비슷해질 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법률 시장이 개방된단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사이에는 공통의 법을 만드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법은 ‘게임의 규칙’ 같은 역할을 한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zone)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의 존을 따르느냐, 일본의 존을 따르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도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 기업에 딱 맞는 법에 따라 사업을 하라고 하면 다른 나라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불편부당(不偏不黨·아주 공평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함)을 위해 어느 한쪽에 눈에 띄게 손해가 가는 법은 거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국제법이 가능한 이유다. 철학자 루소는 구성원 각자가 모두에게 혜택을 주려고 하는 ‘일반의지(general will)’가 사회를 하나로 묶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힘 있는 다수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속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루소는 ‘전체의지(will of all)’라고 한다.

일반의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법은 정의롭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반면, 전체의지를 숨기고 있는 법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며 언젠가는 큰 저항에 부닥친다. 앞으로 FTA가 효과를 내려면 한국과 미국 간에 서로 다른 법을 조정해야 할 경우도 많아질 것이다. 양심에는 국경이 없다. 눈앞의 이익은 정의를 바라보는 눈을 감게 만든다. 한미 양쪽 국민의 일반의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담는 합리적인 법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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