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대항해 시대 선교사들이 맡던 조율의 역할을 지금은 법률가들이 한다. 민감하고 조정이 안 되는 일일수록 다툼이 법정까지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법정에서는 서로 간의 문화와 이해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때 둘 사이를 조율할 법이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어떤 법이 필요하고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의견을 모을수록 두 나라의 문화와 정서는 비슷해질 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법률 시장이 개방된단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사이에는 공통의 법을 만드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법은 ‘게임의 규칙’ 같은 역할을 한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zone)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의 존을 따르느냐, 일본의 존을 따르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도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 기업에 딱 맞는 법에 따라 사업을 하라고 하면 다른 나라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불편부당(不偏不黨·아주 공평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함)을 위해 어느 한쪽에 눈에 띄게 손해가 가는 법은 거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국제법이 가능한 이유다. 철학자 루소는 구성원 각자가 모두에게 혜택을 주려고 하는 ‘일반의지(general will)’가 사회를 하나로 묶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힘 있는 다수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속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루소는 ‘전체의지(will of all)’라고 한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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