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준모]노동정책 정치색을 빼라

  • 입력 2007년 4월 15일 2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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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의 노사가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는 등 올해 들어 노사 관계가 협력적으로 변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장기적이고 강경한 방식의 노사분규가 회사와 근로자 모두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인식이 반영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고용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이런 변화 속에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개칭을 시도하고 있다. 고용 창출,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등 현안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이름만 바꾼다고 노동행정의 초점이 고용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행정이나 입법 추진 방식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개혁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고용이 노동정책의 우선순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또 노동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검증한 뒤 정책을 입안하거나 수정해 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참여정부 들어 추진한 노사관계선진화, 비정규직, 남녀 고용 평등 및 직장 가정생활의 양립 지원,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 관련 법안은 노동기준의 글로벌화,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 고령화 저출산 문제에 대한 국가경제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라 판단된다. 참여정부의 남은 기간에 이런 법안이 안착하도록 노력하면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의 최근 법령 정비 움직임은 고용노동부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정치적 색채가 강하다. 예를 들어 노동부는 파견법 후속 조치인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내 하도급과 불법 파견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담으려 한다. 근로감독관이 현대자동차와 같은 공장 내 하도급 근로자를 불법 파견으로 판정했으나 검찰이나 법원이 노동부의 손을 들어주지 않자 입법을 통해 감독 판정의 권위를 더하자는 취지라 판단된다.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기준을 법령에 담아 규율하겠다는 방침은 생산현장, 더 나아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폭넓은 고민보다는 근로감독의 편리성이라는 조그만 논리에 갇힌 느낌을 준다. 외국에서도 사내 하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나열해 처리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도급과 파견이 갖는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법령 기준을 획일적 또는 경직적으로 운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판례 누적 및 정책운영을 통해 도급과 파견의 구분 기준을 유연하게 처리한다.

또 하나는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3권 부여 문제다. 레미콘 차량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설계인과 같은 직종에 노동법의 전부 혹은 일부를 적용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해 10월 이런 직종에 대해 산재보험법과 공정거래법 적용 등 경제법적 대책을 마련한 뒤 정책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법적 처방을 더한다는 의미다.

‘근로 약자’권리 빼앗는 정책 지양을

처음부터 노동법적 측면에서 검토하고 처리하면 되는 문제를 경제법적 대책도 마련하고 노동법적 대책도 마련하다가 정치역학 구도에 따라 최종 선택하는 모습이다. 고용입법에 대한 재정경제부나 산업자원부의 관심 역시 참여정부 후반 들어 약화됐다. 노동 관련 입법안이 경제와 고용에 미칠 효과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민이 적어질 수밖에 없는 행정구조다.

정부는 정책이나 입법 조치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법안을 만들거나 고쳐야 한다. 노동권만 강조하면 대기업의 재직자 노동권만 보호하고 중소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 실업자, 신규 졸업자 등의 권리를 빼앗는 모순과 악순환이 생긴다. 노동과 고용 관련 정책은 정치 협상을 통해 입법 추진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경제와 산업과 전체 고용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전제해야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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