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주면 됐지 자리 왜 꿰차나” 소신파 교수도

  • 입력 200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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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황중환 기자 386c@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황중환 기자 386c@donga.com
올해 대선과 2008년에 있는 18대 총선은 불과 4개월 차다. 정치권에서는 폴리페서 러시 현상이 대선을 지나 내년 봄까지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04년 17대 총선을 되돌아보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김재윤 의원은 17대 총선 당시 제주 탐라대 출판미디어학과의 유일한 전임교수였다. 탐라대는 2001년 이 학과를 개설했으나 김 의원의 정계 진출로 2004년에 추가 신입생을 받지 않았고, 2005년에는 폐과했다.

17대 총선 당시 김재홍 경기대 교수와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는 각각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이었지만 각각 비례대표와 지역구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진출했다.

서울 한 대학의 A 교수는 16, 17대 총선 때 의원들에게 자신의 저서를 돌리며 공천 청탁을 하고 다녔다. A 교수는 2005년 4·30 국회의원 재선거 때도 열린우리당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17대 총선에서는 여야 합쳐 대학교수 54명이 출마해 비례대표를 합쳐 26명이 당선됐다. 정치권에서는 18대 총선에 이보다 더 많은 교수가 출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 폴리페서 중에는 정치와 학계 양쪽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교수들과 그렇지 않은 교수들이 있다. 이들을 둘러싸고 정치권 주변에서는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수업에 지장을 줘서는 안돼’=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의 곽승준 고려대 교수는 이 전 시장이 중요 정책을 구상할 때마다 그를 찾을 만큼 신뢰가 두텁다. 곽 교수는 매년 해외 유명 학술지를 의미하는 SSCI급 논문을 2편 이상 발표할 정도로 학술적으로도 인정받는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캠프의 김영세 연세대 교수도 마찬가지. 김 교수는 “자문에 응하면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소신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캠프의 정책실장인 김태승 인하대 교수는 이번 학기 강의가 일주일에 사흘이다. 정책실장 자리가 캠프에서 상근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김 교수는 강의를 위해 인천과 서울 서대문 사무실을 오간다. 수업 전날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강의 준비를 한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정책자문총괄을 맡은 경희대 권만학 교수는 수업이 있는 날에는 꼭 e메일을 통해서만 정책 제언을 한다. 권 교수는 수업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제정책 자문역을 맡은 조우현 숭실대 교수는 노사관계 전문가로서 이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와 저술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학생들의 평가도 좋다.

▽‘정책지향형’과 ‘정치지향형’=캠프에 자문단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은 대개 정책을 개발하려는 ‘정책지향형’ 폴리페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기보다는 ‘정치지향형’ 폴리페서로 빠진 경우도 있다.

한 대선주자 캠프의 B 교수는 정책개발 기능보다 교수와 전문가 섭외가 주 역할이다. 이미 정책 개발을 다른 교수에게 ‘하청’을 주는 수준이다. 보통 대선주자 캠프에서는 주자와 독대하는 시간이 많은 교수가 실세로 통한다. B 교수는 이른 바 ‘실세 교수’다.

C 교수는 한때 이 전 시장 캠프에서 그야말로 ‘말발’이 잘 듣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몇 번의 엉뚱한 정책 설명 등 실책이 거듭돼 대선주자와 다소 소원해지면서 고민에 빠졌다.

박 전 대표 캠프 측은 D 교수 때문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는 핵심 자문 교수들이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다른 교수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실상의 ‘스토킹’을 하고 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자문 교수 가운데는 간혹 자신의 업적이 아닌데도 자신 것인 양 생색을 내는 사람도 있다”며 “좀 파렴치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주변의 설왕설래=폴리페서의 정치지향성에 대한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 박사과정 정모(28) 씨는 한 유력한 대선주자의 진영에서 정책 자문에 응하고 있는 자기 과 교수에 대해 “정치적 야심 때문은 아닌 것 같지만 정책적 조언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며 걱정했다.

최근 서울대에서는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교수들 중 누가 캠프로 들어갈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서울 유명 사립대의 한 교수가 여권 대선주자 진영에서 일하게 되자 주위 교수들 사이에서 “어떻게 전형적인 시장주의자가 거기 들어가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신념을 판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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