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경미]미국식 교육 부러워만 할 일 아니다

  • 입력 200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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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 시스템에 무한한 기대를 걸고 자녀를 유학 보내면서 가족 해체의 위기에 처한 가정이 많다. 교육 엑소더스라고 할 만큼 많은 학생이 미국으로 향하는 현상을 지켜보던 차에, 연구년을 맞아 1년간 미국에 체류하게 된 필자는 이 기회에 미국 교육의 면면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주마다 학군마다 상황이 다르고 공립과 사립학교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미국 교육을 일반화해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의 공립중에 다니는 우리 아이를 기준으로 미국 교육의 단면을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까지 교육과정 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됐고, 교과목이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교과목이 단출하다. 우리 아이의 경우 영어 수학 과학 사회는 공통이고 여기에 선택과목 2개를 추가해 총 6과목만을 배운다.

아이의 관점에서 미국 수업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며칠 전 수학 수업에서는 미터법의 환산을 배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하는 미국에서는 미터법 단위를 늦게 다룬다. km, m, cm, mm의 순서를 외우는 비법으로 소개한 문장이 ‘King Henry died Monday drinking chocolate milk’다. 정공법으로 외우면 될 것을 우선 문장을 암기하고 단어의 첫 알파벳을 추출한 후 ‘k, m, c, m’이 의미하는 단위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미국 교육의 이면에 깔려 있는 생각은 딱딱한 지식을 가공해 학생들이 소화하기 쉽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처럼 배려가 지나친 경우도 많다.

지난주에는 아이가 불만인지 자랑인지 모를 상황을 설명했다. 두 시간이나 되는 과학 수업 내내 현미경으로 양파, 아메바 등 네 가지 생물을 관찰하고 그 모양을 그렸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현미경의 부위와 조작법을 설명으로 때우고 생물의 모양을 익히는 데 20분이면 족했을 텐데, 여기 수업은 너무 느슨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미국 수업에서는 교사에 의해 지식이 선언되기보다 탐구를 위주로 하면서 발견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다루는 내용의 양이 적은 편이다. 탐구 활동이 제대로 진행되면 학생들이 지식을 의미 있게 구성해 갈 수 있지만 탐구라는 미명하에 산만한 활동에 그칠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흡수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과다한 지식을 일사천리로 쏟아 놓고 머릿속에 신속하게 저장하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지식의 급체나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내용의 일부라도 익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교육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실생활 맥락과 탐구를 강조하는 경험 위주의 경향과 내용 체계를 중시하고 학문적 엄밀성을 강조하는 지식 위주의 경향,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추처럼 움직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교육은 추의 양쪽에 위치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에서 어떤 경향이 만연하면 부작용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추는 대척점을 향해 움직이게 되지만 그 반대 경향 역시 문제를 드러낼 수밖에 없어 추는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교육 분야가 동네북 신세인 것은 세계 공통 현상인지, 여기서는 미국 교과서의 취약점을 거론하면서 아시아권 교과서의 구조적인 내용 배열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따라서 평범한 결론이지만 내용 체계를 따라 효율적,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우리의 방식과 탐구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시키는 미국 방식의 중간에 무게중심을 설정하고 둘 사이의 절묘한 긴장과 조화를 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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