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의 산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립 2년째 제자리

  • 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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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초 과학을 살려 주세요.” 포스텍(포항공대) 박찬모 총장과 포항가속기연구소 고인수 소장은 최근 기자에게 “‘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립이 늦어져 선진국과의 과학 경쟁에서 뒤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여 다양한 파장과 광도의 빛을 생산하는 ‘빛 공장’이다. 이 빛을 활용하면 일반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세포와 금속물질의 움직임과 표면구조, 분자구조를 볼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수천억 원의 경제 효과를 내는 ‘황금알’이다. 삼성전자는 1999년 ‘빛 공장’에서 휴대전화 비파괴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반도체 소자 기준축의 뒤틀림 현상과 납땜 불순물을 찾아냈고 소자 불량률은 70%에서 10%로 떨어졌다. 》

포스코도 2000년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용 철강이 압력을 받으면 쉽게 깨지는 원인이 주석 불순물임을 밝혀냈다.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제철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도 이 연구 덕분이다.

이런 성과는 포스텍 부설 포항가속기연구소에 1994년 설치된 ‘3세대 가속기’에서 나왔다. 정부가 596억 원, 포스코가 864억 원 등 모두 1500억 원을 들여 완공한 이 가속기는 축구장 20배 크기다. 포항가속기연구소는 태양보다 10억 배나 밝은 빛을 만들어 내는 160m 길이의 기존 3세대 가속기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보다 10억 배나 더 밝은 빛을 쏟아 내는 길이 350m의 4세대 가속기를 세우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4세대 가속기’는 물에서 수소가 떨어져 나오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어 수소연료 등 대체에너지 원천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고, 단백질 구조 분석을 통해 신약 개발 및 유전공학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필수 시설이다.

당초 2005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9년 완공함으로써 외국보다 앞선 각종 연구를 할 생각이었지만 한국이 멈칫하는 사이에 외국이 성큼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내년 말 1km 길이의 ‘4세대 가속기’를 완공할 예정이다. 일본 독일 등도 지난해 시제품을 만들었고 3, 4년 안에 완공하기 위해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한국의 4세대 가속기 건립 계획을 알고 서둘러 투자했다.

2004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은 1000억 원의 필요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긍정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과학기술부는 설계비로 2005년 4억 원, 2006년 4억 원, 올해는 10억 원만 배정했다. 전남 고흥군 우주연구단지, 대전 핵융합연구센터 등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 소장은 “예산만 뒷받침되면 2010년까지는 ‘4세대 가속기’를 완성할 수 있다”며 “차세대 에너지와 생명공학 분야에서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포항=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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