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기네스<5>구 용산 수위관측소

  • 입력 2007년 2월 26일 03시 01분


코멘트
강가에 있는 이상한 등대로 알려져온 서울 용산구 청암동의 ‘구 용산 수위 관측소’. 1924년 건립된 이 관측소는 한강 수위의 변화로 관측소 주변이 육지로 바뀌자 1976년 9월부터 관측 활동이 정지됐다. 사진 제공 서울시
강가에 있는 이상한 등대로 알려져온 서울 용산구 청암동의 ‘구 용산 수위 관측소’. 1924년 건립된 이 관측소는 한강 수위의 변화로 관측소 주변이 육지로 바뀌자 1976년 9월부터 관측 활동이 정지됐다. 사진 제공 서울시
《‘한강에도 등대가 있다’. 2001년 초 몇몇 언론은 ‘전국에서 강가에 세워진 유일한 등대가 한강에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서울 용산구 청암동 원효로4가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 둔치에 등대로 보이는 5m 높이의 흰색 물체가 있다는 것. 기사는 ‘한강사’ ‘서울육백년사’ 등의 사료집과 관할구청의 자료에서도 등대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며 이 지역이 과거 교통요지인 용산나루였던 점으로 미루어 등대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이 보도를 계기로 서울시가 약 1년간 조사를 벌인 결과 이 물체는 등대가 아닌 한강의 수위 변화를 관측했던 ‘구 용산수위관측소’로 밝혀졌다.

관측소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일본인이 많이 살던 용산구 이촌동 일대의 한강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 세워졌다. 1976년 9월부터 쓰이지 않았고 관리 부처가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등대로 오인되기에 이른 것.

세월을 이기지 못해 외벽 상당한 부분의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문짝마저 달아난 관측소는 할 일을 잃은 채 우두커니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수위관측 역사는 1441년 조선 세종 때 측우기와 수표석(水標石)을 만들며 시작됐다. 수표석은 2m 남짓한 직사각형 돌에 눈금을 그려 수위를 측정하던 돌기둥.

성종실록에 ‘지난밤에 비가 많이 왔는데 측우기록과 수표기록을 함께 보고하지 않느냐’는 구절에서 보듯 조선시대에는 두 가지 측정 방법을 함께 썼다.

1915년부터는 현대식 관측 시대로 접어든다. 일본이 한국의 유역 조사를 위해 낙동강을 시작으로 자기관측소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

자기관측은 사람이 눈금을 읽는 수표석과 달리 기다란 강에 박은 관 속에 부자(浮子)를 띄우면 조위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수위를 그리는 방식이다. 구 용산수위관측소는 전국에서는 9번째, 한강에는 최초로 지어진 자기관측소.

서울시는 ‘수위 측정을 하던 독립 구조물로서는 서울 한강변에 유일한 현존물이고, 전국적으로도 남아 있는 예가 희귀한 것으로 보인다’며 2002년 구 용산수위관측소를 서울시 기념물 제18호로 지정했다.

최근의 한강 수위 관측은 초음파로 수심을 측정해 기록을 영상으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