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임원 공무원 아니다” 정대근 회장 수뢰혐의 무죄 선고

  • 입력 2007년 2월 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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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현대자동차그룹에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하나로마트 땅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에게서 3억 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기소된 정대근(63) 농협중앙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문용선)가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정 회장을 공무원으로 간주할 수 없고, 따라서 공무원에게만 해당하는 뇌물수수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

같은 시간 417호 법정에서도 돈을 건넨 쪽인 김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부분에 대해 똑같은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시대에 뒤떨어진 특가법 시행령=검찰이 정 회장을 기소할 때 적용한 특가법 4조는 ‘뇌물죄 적용 대상의 확대’에 관한 조항.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요 사업의 결정이나 임원의 임면 등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관의 임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해 뇌물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 법은 정부관리기업체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이 법 시행령 2조에는 농협중앙회를 비롯해 53개 기관이 공무원으로 간주되는 정부관리기업체로 명시돼 있다.

문제는 이미 민영화됐거나, 다른 기관과 통폐합돼 사라진 기관까지 이 시행령에 남아 있다는 것. 이날 법원이 정부관리기업체가 아니라고 판정한 농협중앙회도 1999년 9월부터 개정된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정부의 간섭이 배제된 민영 금융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런 이유로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는 검찰 측에 특가법상 수뢰죄가 아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수재죄를 적용하라고 공소장 변경을 권유했으나 검찰은 “형량이 낮아진다”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특가법 시행령의 오류 때문에 정 회장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법망을 피해간 셈이 됐다.

▽특가법 시행령 손질 필요=KT&G는 민영화한 이듬해인 2003년 2월 특가법 시행령에 정부관리기업으로 올라 있는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삭제해 줄 것을 법무부에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옛 이름이 그대로 올라 있다. KT&G 관계자는 “법무부가 4년 가까이 별 반응이 없어 지난해 말 다시 회사 이름 삭제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포항종합제철(지금의 포스코)과 한국외환은행, 국민은행 등은 1995년 특가법 시행령이 전면 개정되면서 정부관리기업체 명단에서 빠졌고, 한국주택은행은 1997년 정부관리기업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이후 KT&G와 KT가 민영화하고 임업협동조합은 산림조합으로 바뀌는 등 시행령 정비 사유가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정부는 관련 시행령을 고치지 않고 있다.

정 회장 변론을 맡은 이충상 변호사는 “민영화한 공기업들이 있고 이름이 바뀌거나 통폐합된 곳도 많은데 지난 10년간 특가법 시행령은 그대로 있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특가법 시행령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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