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5>경영은 인재보존, 노조는…

  • 입력 2007년 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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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의 80%가 여성인픺 시세이도 노조는 고객의 불편을 우려해 파업을 자제하고 회사 측은 육아휴직의 확대로 화답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시세이도 매장에서 ‘뷰티컨설턴트(BC)’가 고객에게 테스트용 화장품을 발라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시세이도
조합원의 80%가 여성인픺 시세이도 노조는 고객의 불편을 우려해 파업을 자제하고 회사 측은 육아휴직의 확대로 화답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시세이도 매장에서 ‘뷰티컨설턴트(BC)’가 고객에게 테스트용 화장품을 발라 주고 있다. 사진 제공 시세이도
《일본 도쿄(東京) 도심 신바시(新橋)의 시세이도(資生堂) 시오도메 사무실. 지난달 중순 이 회사의 노사관계를 취재하기 위해 노무담당 임원인 이와타 기미에(巖田喜美枝·여) 이사를 인터뷰하는 자리에는 이 회사 노조 위원장과 노조 중앙집행위원이 나란히 앉았다. ‘사측이 딴소리를 하지 않나’ 하는 인터뷰 감시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임원의 기억을 되살려 주고 보충 설명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인터뷰 중 노조 위원장의 설명이 부족하다 싶으면 임원이 거들어 주기도 했다. 시세이도 노조는 일본 대기업 노조 가운데 ‘할 말은 대놓고 하는’ 강성 노조로 분류된다. 하지만 노사가 서로 대놓고 말하는 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 회사의 노사관계는 더 물어볼 것도 없을 듯했다. 》

○ 노사 신뢰가 일본기업 발전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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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는 노조 조합원 1만2000여 명 가운데 80%가 여성이다. 특히 전국의 직영점이나 백화점 매장 등에서 고객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명하고 파는 뷰티컨설턴트(Beauty Consultant·BC)는 회사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장 직원이다.

그러나 이들은 본사 직원들과는 달리 매장 사정에 따라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근로조건이 훨씬 열악한 편이다. 출산 후에는 2시간 정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육아시간’제도가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뷰티컨설턴트는 거의 없었다.

뷰티컨설턴트 출신인 하야시 미호(林美穗·여) 노조 중앙집행위원은 “출산 후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매우 힘들었다”면서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뷰티컨설턴트들이 지난해부터 육아시간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카즈카 하지메(赤塚一) 노조위원장에게 “그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면 진작 파업 등의 집단행동으로 회사에 요구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생뚱맞은 질문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렇게 답변했다.

“아마 노조 집행부가 파업을 결정했더라도 집단행동에 나설 노조원이 많지 않아 통솔이 안 됐을 거예요. 저희가 종사하는 일이 서비스업이니만큼 직원이 고객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시세이도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에서 파업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언론의 주목을 받을 만큼 큰 기업이나 공기업이 파업하는 일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노조는 고객을 생각하고, 회사는 노조를 배려하는 자세가 시세이도를 포함한 일본 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신뢰가 있으니 회사도 노조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시세이도의 이와타 이사는 “여성 육아지원 문제는 노조가 요구하긴 했지만 회사로서도 경영전략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면서 “인재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육아 문제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회사의 판단이며, 노조의 정당한 요구는 회사가 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노조의 요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4월부터는 ‘캥거루 스텝’이라는 포괄적인 육아지원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일본의 노동법 등에 따른 육아휴직기간은 1년이지만 시세이도 직원은 3년을 휴직하고도 아무 문제 없이 회사에 복직할 수 있도록 했다. 사측은 한발 더 나아가 남성 직원들도 육아지원제도를 이용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사장도 책임질 것은 진다

시세이도는 2005년 3월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때 1362명의 직원이 회사를 나갔다. 회사 창립 이후 135년 만에 처음 있는 희망퇴직이었다. 2개의 공장이 통폐합되면서 잉여인력이 발생한 것이 이유였다.

“희망퇴직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당한 쇼크를 받았습니다. 조합원들에게서 ‘지금까지의 노사관계가 좋은 것인가?’ ‘사측에 더 강경하게 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아카즈카 노조위원장은 “희망퇴직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요구했다”며 “요구가 한 가지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부터 사퇴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세 가지 조건은 △책임을 명확히 하라 △개개인이 희망하지 않는 강제퇴직은 없다 △장기 비전을 조속히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책임을 명확히 하라’는 말은 ‘사장부터 물러나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 실제 희망퇴직을 도입한 사장은 책임을 지고 곧바로 물러났다. 그리고 차기 사장 내정자가 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아카즈카 위원장은 “당시 퇴직조건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주로 50대 이상인 퇴직자들도 회사에 불만이 없었다”면서 “요즘도 희망퇴직 신청 한 번 더 안 받느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라며 웃었다.

일본에서는 직원을 대량 해고할 수밖에 없도록 기업을 운영한 경영자라면 사태에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책임지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다. 시세이도의 경우도 이 불문율이 적용된 하나의 사례다.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노동정책연구원의 한국인 연구원인 오학수 박사는 “일본 기업을 수십 년의 장기적 단위로 분석해 보면 기업이 고용을 보장해 주고 노조가 협조하는 일본식 협조적 노사관계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이 많다”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

△사이타마·도쿄(일본)

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뮌헨·볼프스부르크·하노버(독일), 파리(프랑스)

이은우 사회부 기자 libra@donga.com

△디트로이트·버펄로(미국)

임우선 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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