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담배 피우면 동네 왕따 되부러”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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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부터 6년간 마을 주민 전체가 금연을 실천하고 있는 전남 강진군 작천면 상당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금연 성공을 축하하며 ‘금연만세’를 외치고 있다. 강진=박영철 기자
2001년 1월부터 6년간 마을 주민 전체가 금연을 실천하고 있는 전남 강진군 작천면 상당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금연 성공을 축하하며 ‘금연만세’를 외치고 있다. 강진=박영철 기자
《“아마 저 양반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힘들게 끊었을 거여.” “별별 병이 다 생긴다고 하는디…. 오래 살라믄 별 수 있당가.” 17일 오전 전남 강진군 작천면 상당마을.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는 농촌 마을이 모처럼 소란스러웠다. 군 보건소 직원들이 건강 검진을 하러 찾아왔기 때문. 주민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썰렁했던 마을회관은 활기가 넘쳤다. 방안에 빙 둘러앉은 주민들은 보건소 직원들을 보자마자 금연 얘기부터 꺼냈다. “우리 동네엔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어 다들 팔팔헌디 뭣 땜시 왔당가.” 이상근(72) 할아버지가 너스레를 떨었다.》

송미숙(48·여) 보건소 건강증진계장이 “건강하신지 혈압도 재드리고 금연하시는 어르신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러 왔어요”라고 하자 이 씨는 “우리 좋자고 한 일인데 감사는 무슨…”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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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가구 61명이 살고 있는 상당마을은 6년째 금연 전통을 이어가는 ‘참살이(웰빙)마을’이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힘든 농사일의 고단함을 달랬던 농부의 모습은 마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 동네 남자들은 2000년까지만 해도 40∼50년 이상씩 담배를 피우던 애연가였다. 40년 넘게 담배를 피워 온 박봉근(81) 할아버지 등 서너 명이 1998년 담배를 끊는 데 성공하면서 금연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때 신줏단지처럼 아끼던 재떨이를 치우고 ‘담배 피우다 걸리면 벌금 1000원’, ‘공짜로 담배 받지 않기’, ‘명절이나 경조사 때 외지인 담배 못 피우게 하기’ 등 나름대로 금연 수칙을 정했다.

그러던 중 애연가로 소문난 장모(88) 할아버지가 후두암으로 성대 제거 수술을 받고 말을 못하게 되자 금연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담배 없는 마을 만들기는 2001년 1월 결실을 봤다. 주위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마을의 ‘마지막 골초’ 박현수(60) 씨가 40년 넘게 피워 온 담배를 끊고 금연 대열에 합류한 것.

박 씨는 “동네에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고 담배를 끊었다”며 “그간 입안에 가래가 끓어 고생이 많았는데 담배를 끊고 나니 기침도 멎고 무엇보다 아침이 가뿐하다”고 말했다.

강진군은 금연 전통을 3년째 이어 오던 상당마을에 2004년 숙원사업비로 1000만 원을 지원했다. 주민들은 이 돈으로 낡은 마을공동창고를 보수하고 마을회관에 물리치료기 등 건강 장비를 들여놓았다.

오주익(63) 이장은 “금연보조제를 사용하거나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금연교육을 받지 않고 담배를 끊었다고 하면 다들 믿지 않는다”며 “주민들 사이에 ‘이제는 금주에 도전해 보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강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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