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능력은 아이 경쟁력”… 치밀해진 치맛바람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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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박모(35) 씨. 그가 스트레스를 받는 주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들이다. 요즘 엄마들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이미 나름대로 끝내 놓은 엄마들은 학원 선생에게 ‘선생님이 잘 모른다’며 면박을 주기 일쑤. 박 원장은 “아무리 색다른 해결책을 제시해 봤자 요즘 엄마들은 자신들이 이미 분석해 놓은 토대 위에 결론도 스스로 낸다”며 “엄마들이 책도 많이 보고 이것저것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이 많아 웬만큼 알아서는 상대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정성스레 먹을 것 챙겨주고 그저 공부 열심히 하기만을 조용히 기도하는 게 최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40대 아줌마들은 다르다. 아마추어 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교육 정보에 정통하고 교육에도 열정적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수학 그룹 과외를 지도하는 임모(38) 씨는 “엄마들 자신이 학창시절 혹독한 입시 전쟁을 겪어 보고 이미 배울 만큼 배운 세대이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 면에서 전문가들에게 뒤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며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믿음이 넓고 확고하게 퍼져 있다”고 전했다.

교육 전문가를 자부하는 엄마들은 학원가를 돌며 정보 사냥에 나서는 정보형 매니저와 엄마 스스로가 노력해 얻은 노하우로 아이의 성적을 올려보겠다는 소신파 매니저로 나뉜다.

주부 최선우(40·서울 강남구 역삼동) 씨는 올해 고교생이 되는 딸에게 방학을 맞아 매일 아침, 30분씩 책을 읽어 주고 있다. 최 씨는 딸이 중학교 입학 후 첫 도덕 시험에서 하위권 성적을 받자 충격을 받았다.

딸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책을 집중해서 읽지 못하는 ‘독해 능력’ 부족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최 씨는 ‘읽기’가 안 되면 ‘듣기’로 훈련하면 좋다는 것을 주변에서 듣고 방학 때마다 듣기 훈련을 시키기에 나선 것. 방학 때는 일반 서적류를 주로 읽어 주고 시험 때는 아예 교과서를 테이프에 녹음해 5, 6번씩 반복해 듣게 한다.

최 씨는 “아이의 능력이 제각각이듯 엄마들 능력도 다 다르다”면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엄마의 노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 씨의 딸은 사회 도덕 과목만큼은 이제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엔 아예 아이 교육을 위해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엄마도 많다. 바깥일하며 사교육에만 아이들을 맡길 경우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애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어 고민 끝에 일을 포기하는 경우다.

▶아래 인터뷰기사 참조

장모(47) 씨는 큰아이가 고등학교, 작은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일(약사)을 접었다. ‘정보’가 생명인 요즘 풍토에서는 아이의 재능, 노력 외에 ‘엄마의 능력’도 포함된다며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는 것.

그는 “학원 스케줄 짜고 각종 교육 관련 정보 강좌, 입시 설명회에 참석하다 보면 일할 때보다 더 바쁘다”며 “이제 내 인생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이들 장래를 생각하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경기 안양시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의사 김모(43) 씨도 지난해 병원 일을 잠시 접고 두 아들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김 씨는 “내가 좋은 학교를 나와 누리는 혜택을 생각하면 아이들도 반드시 좋은 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교육에 대한 투자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요즘 엄마들에게 아이 교육은 자신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스스로 성취감도 느끼고 거기서 자기 일을 찾는다.

직장을 다니다 최근 전업 주부가 된 한 주부는 “과제와 숙제를 챙기다 보면 아이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며 “학원도 많고 교육 관련 컨설팅도 많지만 내 아이에게 맞는 정답을 찾아주는 곳은 결국 엄마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완정 사외기자 tyra21@naver.com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아이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강남엄마’ 저자 김소희 씨

“자녀교육에 열 올리는 엄마들 보고 애만 못살게 군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올해로 강남 생활 20년째라는 서울 강남 아줌마 김소희(41·사진) 씨는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과감하게 직장을 접고 전업 주부를 선언하며 아이의 교육서포터로 나섰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아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공교육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교육 목표나 교과 과정에 대한 정보가 제한되어 있다. 엄마들이 얻는 교육정보라는 게 입시 위주의 학원 정보가 다다. 아이들이 공교육 현장에서 배우는 전 교육 과정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이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공교육의 가장 근본이 되는 교과서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라고 말하는 김 씨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채워 줄 수 없는, 그야말로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하려면 부모가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교육 스케줄을 잡고 그에 맞는 밑그림을 그려 줘야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특히 386세대 엄마들은 스스로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 주고 싶은 열정이 크다. 무리해서라도 어학연수를 보내고 다양한 체험학습도 시키고 싶어 한다.”

김 씨는 “아이 교육은 극성만 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게 중요한데 요즘 40대 엄마들은 똑똑해서 옛날 엄마들에 비해 공부에 대한 대화도 많이 하고 애들의 취향에 맞추려 많이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있어야 교육도 잘 받게 한다는 얘기는 어느 정도 맞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했다.

“교육비도 쓰다 보면 끝이 없다. 우리 세대는 노후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교육에 너무 큰 지출을 하면 위험하다. 그래서 요즘 엄마들은 효율적으로 교육비 지출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학원을 보내더라도 어떤 것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것인지 계획하고 장기전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해야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우리 세대 엄마들은 돈 안 드는 인터넷 교육 커뮤니티 정보도 많이 활용한다.”

김 씨는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곧 자신의 커리어라고 생각하는 똑똑한 386 엄마들이 주변에는 많다”며 “내 아이만 돌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들과도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당당한 ‘에듀 서포터’”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아이와 함께 공부하며 아이의 미래를 준비하는 엄마 이야기를 묶어 ‘아이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강남 엄마’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박완정 사외기자 tyr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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