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2007 정시 논술 특집]연세대 논술 문제 유형

  • 입력 2006년 12월 19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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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논술이다. 대입 정시모집에서 논술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 성적과 함께 3대 전형요소의 하나다. 수능과 내신 성적이 이미 결정된 시점에서 수험생들은 논술 실력 향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시모집 논술은 대학별로 유형이 조금씩 다르다. 지원하려는 대학의 논술 유형을 파악해 맞춤식 연습을 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대학별 유형에 맞춘 연습문제를 싣는다.》

[문제] 아래 제시문의 공통된 주제를 찾아 각 제시문을 분석하면서 사회문화 현상에 적용하여 논술하시오.(1800자 안팎. 150분. 답안지 본문에 본인을 알릴 수 있는 어떠한 표기도 하지 말 것.)

(가) 인간의 본성은 惡한 것인데 이것을 善이라 하는 것은 僞 곧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다. 이제 사람의 本性을 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어 이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자연 다른 사람과 싸워 빼앗으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사람은 나면서부터 남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性質이 있어 이것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자연 淫亂한 行實이 생기게 되고 동시에 禮義와 條理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 타고난 본래의 性이나 感情이 가는 대로 따를 때에는 반드시 서로 싸우고 빼앗게 되므로 이것이 分限을 犯하고 조리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되어 마침내는 난폭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스승과 법도에 의한 敎化와 禮義에 의한 敎導가 필요한 것이니 이것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사람은 서로 사양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條理에 합하게 되어 마침내는 세상이 평화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면 人間의 本性은 惡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하니 이것을 善이라고 하는 것은 人爲的인 努力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부러진 나무는 반드시 이것을 바로잡는 도지개에 넣거나 또는 불을 쬐어 반듯하게 잡아준 다음에야 비로소 쪽 곧게 되는 것이요, 또 무딘 쇠붙이는 숫돌에 간 뒤에야 비로소 날카로워지는 것이다.[荀子, ‘善惡篇’]

(나) 사람이 모두 남에게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령 지금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면 깜짝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며,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비난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로써 미루어볼진대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仁)의 싹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싹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싹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知)의 싹이다. 사람에게 이 네 가지 싹이 있음은 마치 사람에게 사지(四肢)가 있는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선(善)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선한 본성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임금은 선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이 네 가지 싹을 가지고 있는 사람 누구나 그것을 키우고 확충시켜 나갈 줄 안다면 마치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나 막 솟아나기 시작한 샘물처럼 될 것이다. 그 싹을 확충시켜 나갈 수 있다면 그는 천하라도 능히 지킬 수 있고 그것을 확충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자기 부모조차도 제대로 모실 수 없게 될 것이다. [孟子, ‘孟子’]

(다) 실제로 이들 일체의 상위(相違)의 참된 원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다. 반면에 사회인은 항상 자기 외부에 있으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이런 경향에서 그렇게 훌륭한 도덕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선악에 대해 이런 무관심이 생겨나는가, 또 어째서 모든 것이 외관만의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명예나 우정이나 미덕도 그리고 종종 악덕까지도 마침내는 그것을 자랑으로 하는 비결을 발견하게 되어 그것 모두가 인위적이고 연기가 되어 버렸는가.

요컨대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철학이나 인간애나 예절이나 숭고한 격언 가운데 있으면서도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타인에게는 곧잘 물어보면서 그 문제를 우리 자신에게는 좀처럼 묻지 않으려고 하여, 우리에게는 기만적이고 경박한 외면, 즉 덕 없는 명예, 지혜 없는 이성, 행복 없는 쾌락만이 있는 것인가.

[장 자크 루소, ‘인간불평등 기원론’]

(라) 우리 안에 있는, 도덕법칙에 대한 단순한 존경의 능력은 도덕감정인데, 그것은 그 자체로서 자연적 소질의 목적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선택의지의 동기인 한에서만 그런 목적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자유로운 선택의지가 그러한 도덕감정을 그의 준칙 안에 통합시키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의지의 성질은 선한 성격이다. 그리고 대체로 자유로운 선택의지의 모든 성격들이 그렇듯이, 그러한 선한 성격은 획득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소질 즉 그것에 어떠한 악도 전혀 접합할 수 없는 소질이 우리의 본성 안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마누엘 칸트, ‘단순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마) 근친상간에 의해 유전병을 발현시키는 열성 유전자가 100개가 넘고 체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아버지, 형제, 아들과 성 관계를 맺어 낳은 아이들의 경우 정상치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신체적 정신적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함 사례들은 동물 종에게서 더 많이 확인된다. 이러한 근친상간 때 나타나는 병리학적 증상들뿐만 아니라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더 적은 수의 자손을 남긴다는 사실은 자연선택을 집약적이고 명쾌하게 보여준다.

근친결합 배제와 근친상간 기피의 유전적 성향을 가진 개체들은 다음 세대에게 이 성향에 대한 더 많은 유전자를 제공한다. 아마 자연선택은 수천 세대 동안 이 계통의 토대를 제공해 왔을 것이고, 그 결과 인간은 결합 배제라는 단순하고 자동화한 규칙을 통해 본능적으로 근친상간을 기피한다.

한편 각 사회가 근친상간의 파괴적인 영향을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던 기회도 극히 드물었다. 이는 근친상간 기피 등 윤리규범 전반이 인간의 정신적 차원, 즉 이성적 측면에 의해 합리적으로 선택된 결과가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며, 윤리규범 같은 문화적 진화의 방향을 사실은 유전자 진화의 원리가 결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 이타주의, 종교 등 보편적 사회적 행위들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생존과 더 많은 번식을 추구하는 유전자의 지배라는 생물학적 뿌리에서 자라난 열매들이다. 숭고한 도덕 가치들의 문화적 진화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자체 추진력을 획득해 유전적 진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유전 물질이 자신을 고스란히 보존해 가는 우회적 방법이며, 도덕은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어떠한 궁극적 기능도 갖고 있지 않다. (…)

인간 유전학은 다른 모든 과학 분야와 더불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조만간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토대에 관한 많은 지식이 축적될 것이고, 유전공학과 복제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를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어도 완만한 진화적 변화는 기존의 우생학을 통해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인간 종은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 인간 종은 무엇을 선택할까? 부분적으로 낡아버린 빙하기의 적응 양상과 동일한, 날림으로 지은 흔들거리는 토대 위에 그대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은―혹은 더 적은―감정적 반응 능력을 지닌 채 더 고도의 지성과 창조성을 향해 나갈까?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관하여(On Human Nature)’]

김성환 학림학원 통합교과 논술연구소 상임연구원

☞ 해설과 분석, 답안은 이지논술 사이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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