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수학 오디세이]하루가 10시간인 십진시계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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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부터는 ‘평’, ‘돈’, ‘근’과 같은 전통단위를 사용할 수 없다. 정부는 상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미터법을 기준으로 하는 법정계량단위를 사용하도록 하고, 전통단위를 쓸 경우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런 강경 조치가 나온 이유는 예를 들어 1근의 경우 육류와 과일과 채소에서 그 무게가 각각 다르게 사용되어 혼란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파트를 평 대신 제곱미터로 표시했을 때, 또 금을 돈 대신 그램으로 표시했을 때 그 넓이와 무게를 금방 가늠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초기의 계량단위들은 권력자의 신체 치수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피트(feet)는 발(foot)의 복수형이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발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1피트인 30.48cm는 영국 왕 헨리 1세의 발 크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왕의 발이 꽤 컸던 모양이다. 1야드는 91.44cm로, 헨리 1세가 팔을 뻗었을 때 코끝에서부터 엄지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1인치는 2.54cm로 엄지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를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법정계량단위로의 전환에서 가장 큰 저항을 받고 있는 평은 가로 세로 1.8m×1.8m 정도로, 한 사람이 편히 누울 때 필요한 넓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전통단위의 기준은 상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정해졌지만, 문제는 1피트는 12인치이고, 1야드는 3피트이며, 1마일은 1760야드와 같이 환산하는 기준이 들쑥날쑥하다는 점이다.

전통단위와 달리 미터법은 체계적이고 일관성이 있다. 센티미터, 미터, 킬로미터를 변환하면 서로 10의 거듭제곱으로 표현된다. 큰 수의 단위인 메가(106m)와 기가(109m), 또 작은 수의 단위인 마이크로(10-6m)와 나노(10-9m) 역시 10의 거듭제곱 꼴이다. 첨단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나노(nano)는 그리스어의 난쟁이 나노스(nanos)에서, 기가(giga)는 그리스어의 거인 기가스(gigas)에서 차용한 용어이다.

인류가 사용해 온 수 체계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십진법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 역시 십진법이다. 인간의 손가락이 모두 10개이며, 초기의 인류는 손가락을 꼽으며 셈을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수학사에 십진법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계량단위로서 십진법이 확립된 것은 프랑스 혁명기이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1m를 지구 자오선의 4000만분의 1로 정하고 혼란스럽던 도량형을 새롭게 정비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내친 김에 시간까지 10을 기준으로 바꾸었다. 하루는 24시간,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와 같이 불규칙한 단위를 가진 시간을 10을 단위로 환산되도록 바꾸어 버린 것이다.

프랑스 혁명 시계에서는 하루가 10십진 시간으로 이루어지며, 시침이 한 바퀴 돌면 하루가 된다. 따라서 시침이 10에 있을 때가 자정이고, 시침이 5에 있을 때가 정오이다. 그리고 1십진 시간은 100십진 분으로 이루어지며, 1분은 100십진 초로 이루어진다.

현재의 시간에서는 1일=24시간=24×60분=24×60×60초=86400초 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기의 시간에서는 1일=10십진 시간=10×100십진 분 =10×100×100십진 초=100000십진 초가 된다. 86400초=100000십진 초 이므로 1초는 1.157십진 초가 된다. 즉 1초가 1십진 초보다 길다.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해 보면, 1분은 0.694십진 분이 되므로 1분은 1십진 분보다 짧다. 1793년 도입된 프랑스 혁명 시계는 1794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지만 1795년에 금지되었다.

프랑스 혁명 달력도 비슷한 시기에 도입되었다. 한 주가 7일인 현재의 달력과 달리 프랑스 혁명 달력에서 한 달은 10일로 이루어진 3개의 십진 주로 이루어진다. 십진 주에서는 9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기 때문에 휴일이 적어져 불만이 적지 않았고, 결국 1805년에 폐지되었다.

시간에 10진법을 반영하려는 프랑스인의 집요한 아이디어는 1897년 수학자 푸앵카레를 대표로 하는 위원회에서 하루 24시간은 그대로 둔 채, 1시간을 100십진 분, 1분을 100십진 초로 정하는 계획으로 부활되었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지지를 얻지 못한 채 1900년에 폐기되었다.

시간과 달력을 십진법으로 통일하려 했던 프랑스의 시도가 결국 실패했던 사실을 현재의 입장에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법정계량단위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우리의 사고와 문화의 일부가 되어 버린 관행을 일시에 바꾸겠다는 발상은 행정편의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법정계량단위를 조속히 정착시키려는 정부와 입장과 익숙한 전통계량단위를 선호하는 입장을 절충하여 두 가지 단위를 상당 기간 병기(倂記)하여 유예 기간을 두는 것이 합리적인 타협안이 아닐까 싶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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