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우리학교 논술 수업]서울 상계동 용화여고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4일 서울 용화여고의 ‘신문 속 논술’ 수업시간. 이인수 교사가 동아일보 ‘이지논술’을 교재로 강의하고 있다.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신문 속 논술’ 수업에서 학생들이 쓴 글은 동료 학생과 상급생, 그리고 담당 교사의 3중 첨삭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다. 안철민 기자
4일 서울 용화여고의 ‘신문 속 논술’ 수업시간. 이인수 교사가 동아일보 ‘이지논술’을 교재로 강의하고 있다.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신문 속 논술’ 수업에서 학생들이 쓴 글은 동료 학생과 상급생, 그리고 담당 교사의 3중 첨삭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다. 안철민 기자
《2008학년도 입시부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이 도입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을 두고 일선 교사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마땅한 교재나 교수법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과목을 넘나드는 논술 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간 고민이 큰 게 아니다. ‘이지논술’은 나름의 방식으로 알차게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공교육 현장을 격주 시리즈로 소개한다.》

서울 상계동 용화여고 ‘신문 속 논술’반 수업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고 한 것이 공자다.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가르침을 얻을 만한 인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런 공자의 가르침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공교육 논술수업 현장이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용화여고. 이 학교 학생들은 친구에게서 배움을 얻고 2학년이 1학년의 논술 스승이 된다.

4일 오후, 이 학교 본관 5층에 마련된 사회교과 교실. 1학년 학생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방과 후 학교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1학년을 대상으로 한 3개 논술반 중 하나인 ‘신문 속 논술’반 수업. 사회·논술 담당 이인수 교사가 동아일보 논술섹션인 ‘이지논술’ 11월 14일자에 게재된 논제를 인용해 학생들에게 문제를 냈다.

“사람의 혈액형에 따라 그 성향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사회 조직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분의 의견을 500자 내외로 써 봅시다.”

20여 분 후, 학생들은 자신이 쓴 글을 왼편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일제히 넘겼다. 옆자리 친구의 글을 받은 학생들은 친구의 글을 읽은 뒤 첨삭에 들어갔다. 이 교사는 “칭찬은 한두 가지, 개선점은 서너 가지를 꼭 적시하라”는 첨삭 원칙을 주었다. 학생들은 옆 친구의 글 옆에 자신의 이름을 먼저 적었다. 이어 친구의 글 곳곳에 빨간색 혹은 파란색 볼펜으로 밑줄과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깨알 같이 적는 ‘실명 첨삭’에 들어갔다.

“도입부에서 주제를 이끌어내고 속담을 곁들인 게 적절하다. 전체적인 주장의 전개도 훌륭하다. 그러나 문단을 나눠서 좀 더 깔끔하게…. ‘열린 생각과 마음’이라는 표현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 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황성실 양)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를 서론 부분에 제시한 것은 남들이 생각하기 힘든 것이다. 내용이 참신하고 관심을 끈다. 그러나 ‘혈액형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이 국가적 손실’이라는 주장은 과장되어 보인다.”(신수경 양)

왼쪽 학생의 첨삭이 끝나자, 이번에는 글을 쓴 학생의 오른쪽 학생에게 원고를 넘겨 두 번째 첨삭에 들어갔다.

신문을 통해 논술을 공부하는 용화여고 ‘신문 속 논술’반은 20명 학생이 3, 4개의 모둠(소그룹)을 이루어 진행된다. 이 모둠은 지망 대학 및 전공을 고려해 관심사나 수준이 엇비슷한 학생들끼리 묶은 것. ‘신문 속 논술’반은 학생들끼리 첨삭을 주고받는 ‘상호첨삭’ 과정을 2중, 3중으로 실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동료 2명의 첨삭을 받은 1학년 학생의 글은 다시 2학년 학생들의 첨삭을 받은 뒤 최종적으로 담당 교사의 첨삭을 받는다. 학생들은 ‘신문 속 논술’반 전용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고 의견을 구하는 ‘사이버 첨삭’을 받기도 한다. 우수 답안은 전체 학생들이 공유하면서 공동 첨삭도 한다.

1학년의 한 학생이 급속한 과학발전이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 지난달 19일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대해, ‘하루’라는 ID의 2학년 학생이 올린 글을 보자. 1학년 글을 첨삭하는 상급생들은 이 교사가 평소 논술 능력이 뛰어난 2학년 중 5∼10명을 임명한다.

“우선 넷째 줄에서 ‘너무도’라는 말은 이상하니 고쳐주는 게 좋을 듯해.^-^ 또 논술에서는 ‘나’ 같이 자신을 드러내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아. 수필이 아니니까. 그리고 여섯 번째 줄에 ‘유용하게’라는 말이 문맥상 안 맞다는 생각이 드는 걸. 위에서는 무인카메라가 사생활 침해라고 했는데, 또다시 예를 들어 말하면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표현은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맨 마지막 문장이 너무 길어 명료하지가 않아.”

“첨삭도 곧 논술 실력”이라는 게 이 교사의 생각. 이 교사는 “무조건 많이 쓴다고 글이 느는 게 아니다”면서 “남의 글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지적하는 과정에서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구분하는 논술 공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과서나 신문,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는 1학년 논술수업에 이어 2학년 때는 수리 개념을 각 교과목에 접목시킨 ‘통합교과형 논술’을 익힌다. 3학년은 진학관리기획부의 지도 아래 지망 대학별 수시·정시 대비 맞춤식 논술지도를 받는다. 또 용화여고는 희망하는 교사들에게서 논술지도 커리큘럼과 세부수업 계획을 제출받아 공개한 뒤 학생들이 각자 원하는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해 배우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