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것들을…” 한숨만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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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결국 오고 말았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처음 발생한 전북 익산시 종계장에서 직선거리로 300여 m 떨어진 곳에서 닭 7만 마리를 키우고 있는 이의택(62) 씨는 “밤잠 못자고 자식처럼 키운 닭들을 땅에 묻어야 하니 머리가 멍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26일 오후 익산시 함열읍 석매리.

농림부의 고병원성 판정에 따라 이 씨의 닭 등 최초 발생 농가에서 반경 500m 안에 있는 4가구 18만6500마리의 닭이 이날부터 일차적으로 도살 처분됐다.

현장 방역 관계자는 “개 677마리와 돼지 300마리 등 500m 안에 있는 가축도 사흘 안에 모두 도살해 땅에 묻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확산 추세에 따라서는 반경 3∼10km의 닭 등도 도살 처분될 가능성이 있다.

경계지역인 반경 10km 안에는 245곳의 농가에서 483만여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고 개 돼지 등도 2만7000여 마리를 사육 중이다.

특히 10km 지점에는 국내 최대의 닭고기 가공업체인 ㈜하림 본사가 있어 인근 지역에서 추가로 AI가 발생할 경우 닭의 반출 반입 자체가 통제돼 조업 중단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도살 처분에서 일단 제외된 양계 농가들도 “닭을 제때 출하하지 못해 사료비 부담이 늘어나고 소비가 급감해 가격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생산비를 건지기는커녕 빚만 지게 생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 사육 마릿수의 28%(3400여만 마리)를 차지하는 전북의 양계 농가와 닭고기 가공업체, 치킨점 등의 동반 타격도 우려된다. 함열읍 내의 한 치킨점 주인도 “끓이거나 튀기면 아무런 해가 없는데도 그저께부터 통닭을 먹으러 오거나 주문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망성면에 있는 ㈜하림은 일본 수출이 중단되고 주문량이 10%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지금까지 1차 직접 피해는 계약농가 59억 원, 본사 91억 원 등 151억 원으로 추산했다.

농림부와 전북도, 익산시 등 방역과 도살 처분을 하는 기관 간 연락체계와 초동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양계 농가 이인숙(46) 씨는 “행정기관의 소독 지원이 안 돼 충남 공주시까지 가서 석회석을 얻어다 아침저녁으로 소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살 처분 대상이라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도살 처분과 매장 작업도 만만치 않다. 25일 오후 AI가 처음 발생한 이상균(56) 씨 농장의 닭을 도살해 매장 처분하는 데 익산시 부시장까지 직접 나서야 했다.

도살 처분은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닭을 질식사시킨 뒤 좁은 닭장에서 닭을 한 마리씩 꺼내 마대에 담아 파 놓은 구덩이에 묻어야 한다.

전북도 전희재 행정부지사는 “작업이 복잡하고 인체 감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반경 500m 안의 18만여 마리를 도살해 묻는 데만 연인원 500여 명이 사흘 동안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3km 이내 전 지역에 대해 소독을 강화하고 군부대와 경찰의 지원을 받아 10km 주변에 통제초소를 15개로 늘렸다.

익산=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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