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논술열풍]고3 초1…학교 학원도… “논술 논술”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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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왔어요”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논술학원에서 수험생들이 논술 강의를 듣고 있다. 이 학원에는 지방에서 논술 원정을 온 학생이 전체 수강생의 60%에 이른다. 김재명 기자
“지방에서 왔어요”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논술학원에서 수험생들이 논술 강의를 듣고 있다. 이 학원에는 지방에서 논술 원정을 온 학생이 전체 수강생의 60%에 이른다. 김재명 기자
엄마들이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초등논술지도사 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들이 아이에게 직접 논술을 가르치기 위해 책읽기 숙제와 토론 등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송파구청
엄마들이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초등논술지도사 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들이 아이에게 직접 논술을 가르치기 위해 책읽기 숙제와 토론 등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송파구청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서울 강남 및 목동 등 유명 학원가는 논술고사 준비를 하려는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다. 최근 학원 논술교육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원가를 맴돌고 있다.

고교생에게만 논술 열풍이 부는 것은 아니다. 논술·서술형 평가를 치러야 하는 초중학교도 논술 무풍지대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논술교육에 나서는 학교가 늘어나는 가운데 자기 손으로 아이를 가르치려고 논술 강의를 듣는 학부모도 증가하고 있다.

▽지방학생 원정 행렬=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유명 논술학원 상담실에는 평일인데도 지방 학생들의 여행용 가방이 한구석에 잔뜩 쌓여 있었다. 지방에서 걸려 오는 문의 전화도 지난해보다 2배 늘었다. 수강생의 60%가량이 지방 학생이다.

제주 모 고교 3학년 김모(18) 군은 지난주 수능을 치른 뒤 곧바로 서울로 왔다. 이달 초 예약한 유명 논술학원에 다니기 위해서다. 그는 고시원에 머물며 2주간 40만 원짜리 논술특강을 듣고 있다.

김 군은 “‘체험학습 때문에 등교를 못 하겠다’고 학교에 얘기했다”며 “지방 학원은 정보가 늦어 체계적인 논술 준비가 어렵다”고 말했다.

임모(18) 군은 이틀에 한 번 대구에서 고속열차(KTX)를 타고 상경한다. 그는 “학교에서도 서울의 논술학원에 간다면 수업을 빼 준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논술학원은 수능 다음 날부터 하루 200명씩 수강 신청이 몰려 현재 1000명이 공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은 지방 학생이라는 귀띔이다.

이 학원 관계자는 “서울대가 지방 학생의 논술 성적이 서울 학생보다 좋다고 밝혔는데 이는 실상을 모르고 한 말”이라며 “서울대에 갈 만한 지방 학생은 대부분 주말이나 방학 때 서울의 학원에서 수강한다”고 말했다.

아예 기숙생활을 하며 논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등장했다. 수도권의 한 학원은 수강생 30∼40명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논술을 강의하고 있다.

온라인 강의도 인기다. 서울에 갈 수 없는 지방 학생이나 유명 학원 강의에 등록하지 못한 수험생들이 몰리기 때문. 메가스터디는 온라인 논·구술강의 신청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7%, 매출액은 97%나 늘었다고 밝혔다.

▽학교도 자구책 마련=일부 일선 고교에선 교사들이 나서 논술지도에 열심이다.

서울고는 국어·사회 교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논술팀이 3학년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와 첨삭지도를 할 예정이다. 신문을 활용한 읽기지도와 토론학습을 준비하느라 교사들이 매일 2시간 이상 마라톤 회의를 하고 있다.

서울 신일고는 1, 2학년생에게도 논술지도를 한다. 방과 후나 주말을 이용해 토론, 글쓰기 수업을 하고 인근 학교와 협력해 논술을 가르칠 교사진을 갖출 계획이다.

이 학교 이호욱 교감은 “교사들은 학원 강사에 비해 학생들을 잘 알고 수시로 지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중학교 때부터 논술지도를 해 학생들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교육을 내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당국도 논술지도 지원=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르면 2008학년도부터 정규 교육과정에서 논술교육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논술교육 내실화 방안’을 22일 발표했다.

초중학교 도덕 사회 과학 등의 교과에 논술 관련 학습목표를 추가해 논술지도를 강화하고, 고교는 작문 교과서에 논술 관련 단원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일선 고교 교사들의 논술지도 역량을 높이기 위해 다음 달에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할 논술교육 동아리 1000개에 500만 원씩 지원할 예정이다. 내년 2월까지 전국에서 7000명 이상의 교원을 대상으로 논술 연수를 하는 등 전국 일반계 1437개교에 평균 10명 이상의 교원이 연수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서울 성보고에선 이렇게

서울 관악구 신림11동 성보고 논술반 수업은 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 가운데 하나다.

‘사막화 현상과 인류의 미래’ 등 교사들이 준비한 강의에 학생들이 앞 다퉈 수강 신청을 한다. 2주 전에 미리 정한 교재를 읽고 토론한 뒤 글을 써보는 수업 방식이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보고는 3월부터 1∼3학년생을 대상으로 주 2회 70분씩 논술수업을 해왔다. 이를 위해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 20명이 ‘논술·구술면접 지도교사단’을 구성하고 1년분의 강의 및 토론 교재를 선정했다.

2학년 봉은섭(17) 군은 “매주 추천 도서를 읽고 토론하면서 지식이 많이 늘어났다”며 “학원은 많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기계적으로 첨삭해 주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 수준에 맞게 강의하고 토론을 유도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1학년생은 방학 때도 주 2회 기본적인 글쓰기와 토론 방법을 배운다. 띄어쓰기와 맞춤법부터 개요 작성법, 토론을 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법까지 기초를 차근차근 익힌다.

2학년 논술반은 법과 철학, 정치와 경제 분야의 다양한 논제에 대해 토론하고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고 첨삭지도를 받는다. 첨삭은 초고에 대해 2번의 대면(對面) 첨삭과 수정을 거쳐 올바른 글쓰기 방법을 지도하는 3단계로 이뤄진다.

3학년생은 실전연습에 주력한다. 책을 읽으며 쌓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매주 두 편의 글을 쓰며 스스로의 실력을 점검한다.

성보고는 2008학년도 입시부터 논술 비중이 커지는 것에 대비해 3년 과정의 논술 교육을 마련했다. 논술·구술팀 교사들은 매주 회의를 열어 교재와 수업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교육 내용을 업그레이드한다. 최영하(53) 연구부장은 “논술학원을 다닐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이 많다”며 “통합논술이 쉽지는 않지만 교사들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학교 차원에서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학부모들 논술지도사 과정 수강 열기

초등학교 2학년생과 중학교 1학년생 아들을 둔 문미순(43·서울 송파구 문정동) 씨는 9월부터 서울 송파구 삼전동 송파구민회관에서 초등논술지도사 과정을 듣고 있다. 아이들에게 직접 논술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는 집안일을 하며 월요일마다 3시간씩 강의를 듣는다. 매주 책을 읽지 않으면 토론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 강행군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문 씨는 아들 생각에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결석하지 않은 ‘모범생’이다.

문 씨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도 했지만 틀에 박힌 학원 교육이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었다”면서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혼자 공부하라고 할 수도 없어 내가 배워서 직접 가르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배운 내용을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쓰기를 돌봐주니 아이의 실력이 느는 것 같다는 게 문 씨의 말이다.

2008학년도부터 대학입시에서 논술고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논술지도를 제대로 하는 학교는 드물고 학원 교육을 믿기 어려워 직접 논술을 가르치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이른바 ‘논술 DIY(Do It Yourself·스스로 하기)’다.

2004년 논술지도사 과정이 처음 생겼을 때 수강생은 강좌 개설을 제안한 한봉희 한국독서문화지도사회 송파구지부 회장과 지인 10여 명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모집 공고가 나면 이틀 만에 정원 50명이 다 찬다. 빈자리가 있으면 수강하겠다는 대기 인원이 20명을 넘는다.

한 회장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책을 별로 읽지 않고 기술만 익히는 것을 본 엄마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수강 신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독서운동기관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에 따르면 홀수 달에 개강하는 독서지도사 과정에 평균 600여 명이 등록하고 있다. 취업 목적으로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이 많지만 자녀 교육을 위한 수강생도 38%나 된다.

이 기관의 독서·논술지도사 취득 관련 교육과정 등록 인원은 2001년 1844명에서 지난해 3823명, 올해(9월까지) 3051명으로 급증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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