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잠긴 학교 상담실

  • 입력 2006년 11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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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1시 반경 서울 광진구의 한 중학교. 만나는 학생들에게 상담실 위치를 물었으나 모두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수소문 끝에 찾은 상담실은 불이 꺼져 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운동장만 학생들로 붐볐다. 상담실의 위치는 교무실과 생활지도부 사이. 담임교사나 다른 선생님들의 눈에 안 띄게 상담을 받기가 어려운 위치다. 한 1학년 여학생은 “상담실은 생활지도부에서 처벌받는 애들이 가서 지도를 받는 곳이라 상담할 일이 있어도 이상하게 보일까봐 안 간다”고 말했다.》

이 학교 전교생 1308명 중 올해 학교 상담실을 찾은 학생은 전체의 3%에도 못 미치는 38명. 그나마 이들도 교사에게 처벌받아 지도가 필요한 학생이 대부분이다.

▽불 꺼진 상담실=고등학교 상담실은 아예 상담실이라는 명패를 떼야 할 지경이다. 21일 오후 4시에 찾은 광진구의 한 고등학교 상담실 역시 문이 잠겨 있었다.

교사의 안내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시험지 6, 7묶음과 청소도구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전교생 1500여 명 중 상담을 받는 학생은 한 달에 1명 정도.

상담실 기획담당 김모 교사는 “상담실이 활성화되면 좋겠지만 학부모들은 대학 진학에만 관심이 온통 쏠려 있고 학생들도 학원 다니느라 바쁜데 어디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상담을 원하는 학생은 많다=학교 측 설명을 들으면 상담을 원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상담 효과도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의 ‘1388 청소년 전화’ 실적 분석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하루 평균 청소년 상담건수는 342.3건으로 작년 같은 시기(174.3건)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밝힌 개인 면접 및 전화 상담 유형별 비율을 보면 왜 학교 상담실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학생들의 고민이 대부분 가족문제와 학교문제여서 부모나 담임교사와의 상담이 어려운 점이 많다.

학교 내 상담은 효과도 크다. 집과 부모 모두 포기할 정도로 탈선했던 K(14) 군은 학교 상담실에 일주일에 세 번 찾아오는 상담자원봉사자와 올 5월부터 6개월간의 대화를 통해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돌아왔다.

K 군은 “공부하라는 말밖에 하지 않는 엄마와 ‘문제아’라고 낙인찍은 선생님들이 싫어 자꾸만 빗나갔는데 나에 대한 편견이 없는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매주 대화를 하다 보니 내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부모, 학교, 사회 모두 공부에만 관심=현재 교육부가 정한 전문상담교사가 고정 배치된 학교는 없다. 작년 9월 교육부가 전국 181개 지역교육청에 배치한 219명의 전문상담순회교사가 전부.

교육부는 올해 전문상담교사 402명을 학교별로 배치하려 했으나 예산 부족과 한정된 교원 수를 이유로 채용 예정 인원을 줄여 2007년 175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교육부 학교폭력대책팀 박정희 연구관은 “선진국은 한 학교에 전문상담교사가 1명 이상씩 배치돼 평소 전교생의 상태를 파악해 놓는 것은 물론 외부 전문기관과 연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학생 상담이 들어왔을 때 심층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기관에 바로 연결할 정도로 학생 문제 해결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

김희대 한국전문상담교사 협의회장은 “학교 내 상담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져도 학교폭력, 자살, 왕따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우선 학교와 학부모들이 학생의 공부에 대한 관심 중 일부분만 이 분야로 돌려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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