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논술에 대한 오해 풀기(5)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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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논술 문제,정말 어려운가?

《얼마 전에 한 원로 문학평론가께서 “나도 S대 논술은 자신이 없다”고 한 말이 세간의 화제였지요. 이 말을 디딤돌로 해서 교육부총리가 논술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할 것을 대학에 요청하기도 하고, 논술 비난론과 논술 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한번 따져 보아야 하겠습니다.》

정말 대입 논술 문제가 학생들이 쓰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공교육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것일까요? 물론 어려운 문제가 가끔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논술 문제를 어렵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문제에 주어진 제시문만 읽고는 쓰기 힘든 경우입니다. 논제가 다루는 주제나 쟁점에 대하여 상당 수준 배경지식도 있고 나름의 식견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경우입니다. 출제되었던 문제를 예로 들어 볼까요? 나이 들어가는 것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내용의 제시문들을 주고, “제시문에 담긴 ‘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고 자기 의견을 논술하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농담 반 섞어 말하자면, 웬만큼 ‘세월이 흘러가도’ 쓰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욕망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답안을 쓰는 학생들은 10대 후반이기에 더 어렵게 느꼈을 것입니다.

둘째, 제시문이 어려운 경우입니다. 작년에 어떤 대학 논술 문제는 제시문들의 공동 주제를 찾아서 이를 사회 문화현상에 적용하게 하였는데, 공통 주제를 찾은 학생은 지원자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는 소문입니다.

이렇게 문제가 실제로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급히 싸잡아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논술 교육에서는 정보와 분석 능력의 부족 때문인지 싸잡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공교육 전체를 무능한 집단으로 싸잡아 공격하고, 사교육 전체를 논술 교육의 주체로 싸잡아 평가합니다. 그리고 논술 문제를 싸잡아 어렵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정말 논술 문제가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인지 정확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앞의 예처럼 실제로 어려운 경우보다는 실제보다 더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렵게 느낀다면 느끼게 한 쪽에 책임이 없지 않겠지요. 그러나 느끼는 쪽에도 상당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학생들의 경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교 교과과정에서 하기로 되어 있어서 해야만 하는 것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제로 교과서를 보면 서너 쪽 넘길 때마다 생각하고 써보아야 할 주관식 물음들이 나옵니다. 특히 사회 및 도덕 교과서의 주관식 물음 중 상당수는 대입 논술 문제와 유사한 수준입니다. 또 독서 교과서에 실린 지문 중 상당수는 대입 논술 문제 제시문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학습 과정에서 그런 주관식 물음들에 대해 자료도 찾고 생각해 보고 써본다면 지금보다는 대입 논술 문제가 훨씬 더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것입니다. 대학의 논술 관련자들이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충실히 수행한 학생이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문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고교 교과 과정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충실히’ 수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교과 과정을 현실에 맞추든지 아니면 교과과정이 실제로 수행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하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논술 시험은 선발시험이기 때문에 지원자 중 상당수는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에서는 3년 동안 쌓은 능력을 전체적으로 평가하여 성취도를 점수로 부여받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를 출제하게 되며 특히 중간 수준의 문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논술 시험은 지원자 중에서 우수 학생을 선별하는 선발 시험입니다. 따라서 지원자 대다수가 무난히 접근할 수 있는 문제를 낼 수는 없습니다. 3년 동안 쌓은 능력을 다 발휘하여 집중해서 고민해야 길을 찾을 수 있는 문제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결국 합격권에 들 학생들은 충분히 접근 가능하지만 그 수준이 안 되는 학생들은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출제됩니다. 지원자 대다수가 무난히 접근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선발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논술이 고교 졸업시험으로 바뀌는 바람직한 제도가 시행될 날이 온다면 그때는 문제의 성격이 지금과 달라질 것입니다.

학부모나 평소에 논술에 관심 없던 일반인에게는 논술 시험이 실제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논술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또 많이 변화된 고교 교과과정에 대한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논술 문제를 본다면 누구나 어렵게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3년 동안 피땀 흘려 키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 별 관심 없던 사람이 척 보고도 접근할 수 있는 논제를 낸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

실제 대입 논술 문제는 그해 그 대학에 시험 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대학의 논술 시험 난이도는 지난 2, 3년간 그 대학에 응시했던 학생들이 결정합니다. 과거 시험에 대하여 학생들이 반응했던 결과를 바탕으로 논술 시험의 난이도는 해마다 조금씩 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급하게 논술문제 난이도를 자기를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하겠습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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