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감소→과열 경쟁→사고 급증…택시 ‘위험한 질주’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9분


코멘트
직장인 김모(27·여) 씨에게 올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그가 탄 택시가 2번이나 사고를 냈기 때문.

4월 10일 택시가 과속을 하다 추돌 사고를 내는 바람에 무릎을 다쳐 물리치료를 받던 김 씨는 같은 달 29일 또다시 택시 사고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한 달에 2번이나 사고를 당하자 보험회사에서 혹시 보험금을 타내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며 “이젠 택시 타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택시가 불안하다. 택시 승객은 계속 줄고 있는데 택시 사고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택시 승객이 줄었고, 이에 따라 생존경쟁에 내몰린 택시 운전사들이 무리한 운행을 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늘어나는 택시, 줄어드는 승객=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공제조합에 가입한 법인(회사)택시 중 절반에 가까운 45.5%가 지난해 한 해 동안 인명사고를 냈다. 2002년 법인택시의 대인사고율이 32.2%인 점을 감안하면 4년 새 13.3%나 늘어난 수치다.

개인택시 역시 대인사고율이 2002년 11.6%에서 지난해 16.7%로 증가했다. 지난해 택시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312명, 부상자는 9만6728명에 이른다. 반면 일반 승용차의 지난해 대인사고율은 5.5%로 매년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택시 사고가 급증한 것은 택시 승객 수가 줄어들면서 수요 공급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 해 택시 승객은 2000년 연인원 50억 명에 달했지만 매년 점차 줄면서 지난해는 38억 명까지 떨어졌다.

승객이 줄어들면서 택시 운전사들의 업무 강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택시 승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 손님을 많이 태우려고 무리한 불법운전이나 과속이 크게 늘고 있다. 사납급을 채우기 위해 평소 8시간 일하던 운전사들이 12시간을 넘게 일하는 풍경은 이제 다반사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역 앞에서 승객을 기다리던 택시 운전사 조모(50) 씨가 차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조 씨는 뇌경색 판정을 받았지만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은 “다른 택시 운전사보다 특별히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 씨의 가족들은 “벌이가 점점 줄면서 쉬는 날도 없이 거의 매일 운전대를 잡았다”며 산재를 주장하고 있다.

실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택시 운전사의 연수입은 2003년 924만 원에서 지난해 864만 원으로 줄어 한 달 평균 72만 원을 벌고 있다.

▽불법도급, 부제 위반도 사고 부추겨=서울 성북구 삼선교 근처 버스정류장에선 ‘택시 대여’가 이뤄지고 있다. 김모(58) 씨는 한 택시 회사에서 대당 월 200만 원을 주고 택시 7대를 빌려와 파트타임 운전사에게 12시간에 5만8000원을 받고 빌려준다.

김 씨는 “파트타임 운전사들은 대부분 신용불량자나 사고를 많이 낸 기사들”이라며 “이들은 대여료를 뽑기 위해 무리하게 운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택시 운전으로는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없게 되자 경력이 많은 운전사들이 택시업계를 떠나고 그 자리를 젊은 운전자들이 메우면서 택시 사고가 크게 늘고 있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민택노련)은 올해 자체 조사결과를 토대로 서울 법인택시 2만3000여 대 가운데 1만여 대가 불법 도급택시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개인택시 부제 위반도 사고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3부제로 운행하는 개인택시는 이틀 일하고 하루를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운전사들이 휴무 차량을 나타내는 ‘가’ ‘나’ ‘다’ 표시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방법으로 휴무일을 위반하고 있다.

한양대 교통시스템공학과 임삼진 교수는 “줄어드는 승객 수에 비해 택시가 지나치게 많은 데 근본 원인이 있다”며 “경쟁력이 없는 택시의 퇴출 통로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