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최대 800억 피소 위기

  • 입력 2006년 10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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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2001년부터 병의원들이 보험 처리한 약의 일부에 대해 과잉 처방이란 이유로 약값을 추징하자 병의원들이 집단 반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7월 건보공단을 상대로 추징당한 약값 48억 원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전국사립대병원장협의회도 41개 병원장 공동 명의로 집단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사립대병원장협의회 박창일(세브란스병원장) 회장은 8일 “환자 치료상 어쩔 수 없이 약을 처방하더라도 건강보험의 처방 기준을 넘었다는 이유로 과잉 진료로 보고 약값을 추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민사소송을 둘러싼 법률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원평가원은 질환별 건강보험 적용 약을 일일이 정한 ‘요양급여기준’에 따라 병의원들이 과잉 처방을 했는지를 판단한다. 약값의 과잉 지출로 건강보험의 재정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평가원이 과잉 처방했다고 판단하면 건보공단은 건강보험법 52조 ‘병의원이 부당 이득을 취할 경우 이를 환수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약값을 추징하고 있다. 의약분업 직후인 2001년부터 2006년 8월까지 추징된 돈은 모두 815억28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9월 한 개원의는 ‘약값 추징이 부당하다’며 건보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대법원은 “건강보험법 52조가 약값 추징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 줬다.

건보공단은 이후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 750조를 근거로 ‘과잉 진료는 위법’이라며 약값 추징을 계속해 왔다.

건보공단은 “국내 의사들이 외국 의사들에 비해 과도하게 약을 처방하기 때문에 심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 “의사들의 주장은 집단 이기주의이며 과잉 처방은 보험 재정 악화로 직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재정 적자 우려에 따른 보험료 인상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보공단이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재정 적자를 메우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추징당한 약값을 돌려받으려는 병의원들과 돌려줄 수 없다는 건보공단의 갈등은 심각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건보공단이 패소하면 수백억 원의 약제비를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보험 재정이 더욱 약화될 개연성이 있으며, 병의원들이 패소하면 일선 의료현장에서 약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와 요양급여기준의 범위에서만 약을 처방하려는 의사가 갈등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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