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우리학교 논술 수업]평택 송탄여고 스스로 학습법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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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기 평택시 송탄여고에서 열린 논술수업. 3학년 유민아 양(왼쪽)과 심고은 양이 스스로 만든 논술문제와 답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재영 기자
5일 경기 평택시 송탄여고에서 열린 논술수업. 3학년 유민아 양(왼쪽)과 심고은 양이 스스로 만든 논술문제와 답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재영 기자
《2008학년도 입시부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이 도입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을 두고 일선 교사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마땅한 교재나 교수법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과목을 넘나드는 논술 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간 고민이 큰 게 아니다. ‘이지논술’은 나름의 방식으로 알차게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공교육 현장을 격주 시리즈로 소개한다.》

“저는 사회적인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 사회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며 또 구체적으로 어떤 해결방안이 있는가 하는 것을 문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5일 오후 6시 반, 경기 평택시 서정동 송탄여고의 논술교실. 3학년 김다연 양이 선생님이 내 준 8개의 제시문을 가지고 스스로 문제(논제)를 만들었다. 김 양은 제시문 가운데 4개를 선택해 직접 논제를 구성한 것은 물론 답안도 만들었다.

“3번과 6번 글을 참고로 해서 노동자 문제로 야기될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서론입니다. 그리고 7번 글을 중심으로 서론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도출하면서 본론으로 삼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1번 글에서 착안해 서로 다른 당사자들 사이에 사회적인 갈등이 불거졌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걸로 결론을 맺을까 합니다.”

김 양의 발표를 지켜보던 나머지 18명의 학생들은 “까르르르” 하는 웃음과 함께 박수를 쳤다. 논술수업을 이끄는 이도희(44·국어) 교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 좋은 접근법이네. 그런데 다연이가 고른 1번 글에서 궁금한 내용이 있는데, 정말 이 세상에 완전한 평등이란 게 가능할까?”

김 양은 “자기의 이익만을 주장한다면 평등은 불가능하겠죠. 서로 양보해서 결국 불만을 최소화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하고 대답했다.

김 양에 이어 교단으로 나온 김성희 양은 ‘이기주의’라는 단어를 주제로 삼아 제시문 중 4개를 선택해 묶었다. 또 이해인 양은 ‘평등의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를, 최혜윤 양은 ‘사물의 양면성’을 테마로 각기 제시문을 골라냈다.

이날 논술수업은 이 교사가 최근의 신문 기사 및 사설(칼럼 포함), 시사 잡지에서 발췌한 제시문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작됐다(아래). 제시문은 모두 8개. 언뜻 보아 일부 제시문끼리는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있어 보였지만, 또 어떤 제시문들은 무관해 보였다.

①중국 가는 하늘 길, 대한항공-아시아나에 반씩 나눴다

②워싱턴 중도파가 보는 ‘한반도와 한미동맹’

③포항 끝 모를 파업, 얻은 건 ‘머리띠’ 잃은 건 ‘일자리’

④수준별 수업의 논란

⑤새 교육부총리, 평등교육 코드 깨야

⑥‘도시의 성장은 일자리에 달렸다’-명암 갈린 두 도시 이야기

⑦‘양극화 해소’, 정권의 아이러니

⑧‘괴물’ 쏘나타 3700대 판매와 맞먹는다

이후 학생들은 다음 과정을 거쳐 답안을 완성한다.

제시문을 모두 읽은 뒤 각 제시문을 200자 내외로 요약한다→제시문 간 공통점, 차이점, 연관관계를 파악한다→진학을 희망하는 대학의 기출문제를 보고 문제유형을 익힌다→자기 자신에게 낼 ‘맞춤형’ 논제를 머릿속에 구상한다→논제와 무관하다고 판단되는 제시문들을 걸러낸 뒤 선택한 제시문들을 토대로 답안을 구상한다→동료들 앞에서 자신이 만든 문제와 답안 구상을 발표한다→동료의 문제 제기와 교사의 추가 질문을 통해 답안이 다듬어진다→원고지에 답안을 적어 제출한다→지도 교사의 첨삭지도를 받는다.

이 교사가 지난해 3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2시간 씩 진행해온 송탄여고의 논술수업은 신선하고도 충격적이다. 학생들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논술문제 유형에 맞춰 스스로 논술 문제를 내고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다. 원하는 학생은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으며, 제시문은 일간지, 시사주간지, 각 분야 전문서적에서 발췌된다.

“논술은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니고 자기 스스로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은 논술을 학원에서 문제집 풀면서 배우는 걸로 알고 있어요.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의 경우 핵심은 창의력입니다. 그런데 창의력은 교사가 절대 가르칠 수가 없어요. 학생 스스로 제시문을 이리저리 연관시켜 보는 과정에서 창의력과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 교사의 논술수업을 2학년 1학기 때부터 들어왔다는 이 학교 3학년 김지은 양은 “처음에는 수업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염두에 두고 내가 스스로 문제를 자꾸 만들다 보니 어떤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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