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성일]포항시민 분노의 목소리 안 들리나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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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한국경제 근대화의 상징이다. 철강입국이라는 의지 하나로 1968년 포항 모래밭에서 시작된 포항제철(포스코)은 최근 맥킨지사에 의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 중 한 곳으로 뽑혔다.

그 포항에서 엊그제 큰일이 벌어졌다. 50일이나 계속되는 건설노조의 파업과 불법 폭력 시위를 보다 못한 무려 4만∼5만 명의 시민이 궐기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들이 노조에 맞서 이처럼 대규모 ‘자구 시위’를 벌이기는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장기간 계속된 파업과 폭력 시위로 포항경제는 현재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 전문건설업체의 공사가 전면 중단된 지 오래이며 이에 따라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포항의 300개 전문건설업체 중 부도 위기에 있는 업체가 107개라고 한다.

관련 분야가 타격을 입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되는 폭력 시위로 파업과 관계없는 시민생활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피서객들이 포항을 위험한 지역이라며 기피해 휴가철 경기도 놓침으로써 각종 생활서비스 산업 분야도 타격을 입어 도시 전체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간신히 노사 간 합의안이 도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의 지휘에 따라 현지 조합원의 찬반투표에도 부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조집행부가 합의안을 거부했다. 게다가 서울 울산 광양 등 외지에서 온 시위대가 오히려 주축이 되어 과격 시위를 계속하자 포항 시민들의 참았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노조집행부는 시민들의 자구 시위를 관제시위라고 격하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는 단호한 민심의 표출에 당황한 나머지 애써 외면하려는 두려움의 표시일 뿐이다. 포항 시민의 행동은 포항뿐 아니라 국민 다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즉 법질서와 시민생활을 안중에 두지 않는 민주노총의 행태에 대해 앞으로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미리 보여 주는 경고다. 따라서 현 사태를 일으킨 노조 지도자들은 포항 시민들의 자구 시위가 주는 경고의 메시지를 똑똑히 새겨들어야 한다.

첫째, 시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노조의 폭력적 파업문화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파업은 노동권의 행사이지만 어디까지나 노동력 공급을 거부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이를 빙자하여 온 시내가 떠나가라 확성기를 틀고, 쇠파이프를 들고 난투극을 벌이고, 건물을 무단 점거하는 것은 노동권의 행사가 아니라 집단 폭력일 뿐이다. 특히 다수 시민이 보는 피해를 볼모로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은 이제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상급 단체가 주도하는 정치주의 노동운동을 배격한다는 것이다. 포항 사태에서도 보듯이 현장 조합원은 간신히 마련된 노사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조차 못해 보고 소수가 조종하는 상급 단체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조합원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수 지도자의 정치이념에 의해 움직이는 노동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고 곧 ‘그들만의 노동운동’으로 전락할 것이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편향된 이념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내심은 이제 거의 한계에 달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영국에선 1984년 탄광파업 때 파업 불참 근로자를 출근길에 태워 준 택시 운전사가 살해된 사건 하나로 여론이 급격히 반전되어 파업도 실패하고 노조 자체도 와해되었다. 일본에선 시민들의 출근을 담보로 한 기관사들의 파업에 여론이 등을 돌린 이후 공공 노조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노조는 존립 기반을 상실한다는 각국의 경험이 우리에게는 예외일 수 있겠는가?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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