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비리 근절’ 전국 법원별 판사회의 “어쩌다 이 지경…”

  • 입력 2006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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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구속을 사법부의 최대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대법원은 전국 법원에 판사회의 소집을 요청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9, 10일 서울중앙지법과 수원 대전 춘천지법 등에서 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서울고법은 10일 전체 법관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이들 법원에서는 조 전 부장판사가 구속된 뒤 나타나고 있는 ‘판결 불복’ 움직임 등 사법부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사태에 대한 자조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한 지방법원의 판사회의에서 한 부장판사는 발언 도중에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장판사는 “대부분의 판사들은 자부심을 갖고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과도한 업무 부담 속에서도 묵묵히 일해 왔다”며 “법원 바깥에서는 (조 전 부장판사의 사례만 보고) ‘판사들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는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다수 판사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고법의 설문조사에는 10일 저녁까지 130여 명의 판사 가운데 모두 40여 명의 판사가 설문에 응했다. 판사들은 암행감찰 실시 방안, ‘관선변호’ 근절 선언 등을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회의에서는 주로 법관 경력 5년 전후의 젊은 판사들이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법원 수뇌부에 전달해 달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기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전국 법관 2240명에게 e메일을 보내 진지한 의견 제시를 요청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양심으로 남아 있어야 할 법관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금품 수수나 향응 제공에 연루돼 구속됐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심히 부끄럽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법정에서 당사자나 방청객들의 눈길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렵다는 소리가 들린다”고 밝혔다.

▼“조관행 前판사 판결 못믿어” 사법불복 사태 조짐도▼

조관행 전 부장판사가 8일 구속된 이후 개별 판결에 대한 당사자의 불신과 반발이 표출되고 있다.

2004년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였던 조 전 부장판사가 맡았던 매매대금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박모(54) 씨는 9일 이 판결에 문제가 없는지를 조사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냈다.

2003년 하모 씨를 상대로 2억3000여만 원의 매매대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던 박 씨는 재판 과정에서 “하 씨가 ‘2억3000여만 원 중 9800만 원가량을 수표로 줬다’며 위조 전표를 제시했는데도 재판부가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진정서에서 “위조 전표에 대한 사실 확인을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조 전 부장판사가 ‘왜 시간 낭비를 하게 하느냐. 말도 안 되는 증거 신청으로 재판부를 창피하게 하지 말라’는 면박만 들었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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