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무원의 로비 등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 관련 단체 취업을 금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또 국가공무원 가운데 명예퇴직수당을 지급할 수 없는 대상도 조사 수사 감사 등을 받는 사람 등으로 극히 제한돼 ‘선(先) 자리 확보, 후(後) 명예퇴직’을 막을 수 없는 실정이다.
▽퇴직 2개월 전에 미리 취업=본보와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실이 2003∼2005년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등 11개 중앙부처 1∼3급 공무원의 명예퇴직 현황을 조사한 결과 고위 공직자 84명이 퇴직 후 수일∼수개월 내 산하 기관 등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퇴직금에 더해 3400만∼1억4367만 원의 명예퇴직금을 받았다.
재경부 1급 출신 A 씨는 1억3000여만 원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지난해 3월 30일 퇴직했지만 하루 전에 BC카드 사장으로 취업했다.
8600만 원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지난해 3월 10일 퇴직한 건교부 1급 출신 B 씨는 퇴직 4일 후 전국버스운송조합연합회 상근부회장이 됐다. 재경부 1급 출신 C 씨는 퇴직 당일 산업은행 감사로 취업했다.
퇴직 전 소속 부처별로 보면 △산업자원부 12명 △재경부 11명 △건교부 9명 △보건복지부 9명 △노동부 9명 △정보통신부 8명 △과학기술부 8명 △환경부 6명 △농림부 5명 △문화관광부 4명 △기획예산처 3명 등이다.
이들이 취업한 곳은 공기업 외에도 한국생산성본부, 대한상공회의소, 유관 협회, 대학, 대형 법률사무소, 투자회사 등 다양했다.
정 의원은 “재직 때 미리 자리를 확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퇴직 직후 취업하겠느냐”며 “심지어 퇴직 2개월 전에 취업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무 관련성을 △재정 보조를 직접 제공하는 업무 △인·허가 등과 직접 관계되는 업무 △검사·감사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조세의 부과·조사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등 실무자 수준으로 제한해 사실상 고위 공무원에게는 적용이 어렵다.
퇴직 공무원이 취업하려면 1차적으로 각 부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고위 공무원은 실무 차원의 일을 하지 않는 데다 선후배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 생리상 엄격하게 적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관련 단체에 취업한 D 씨는 “많은 실무팀을 거느리는 고위 공무원에게 업무 관련성을 엄격히 적용하면 퇴직 후 취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퇴직 후 취업에 대한 2차 승인을 하는 행정자치부 윤리담당관실은 “각 부처에서 ‘문제가 없으니 승인해 달라’는 서류가 대부분”이라며 “취업이 제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또 명예퇴직금 지급의 제외 대상은 조사 수사 감사 등을 받는 사람 외에는 ‘정부 기능이 공사화 또는 민영화되는 기관에 소속되기 위해 퇴직하는 자’로 한정돼 있다.
정 의원은 “공직자윤리법 취지를 사실상 위반한 고위 공무원에게 명예퇴직금까지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원회는 “명예퇴직금은 정년까지 남은 기간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라며 “명예퇴직에 따른 조직 순환 등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5.3.24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고위공무원 명예퇴직자 취업 사례 부처 직급 퇴직일 취업일 취업 현황 명예퇴직금 재정경제부 1급 2005.1.20 2005.6.24 보고인베스트먼트 대표 1억4367만 원 1급 2005.2.25 2005.2.25 산업은행 감사 1억1635만 원 1급 2005.4.11 2005.4.13 한국수출입은행 감사 6014만 원 문화관광부 2급 2003.7.31 2003.8.18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운영본부 사장 6626만 원 2급 2005.9.9 2005.9.16 그랜드코리아레저 이사 8308만 원 산업자원부 2급 2004.12.17 2004.12.15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1억59만 원 2급 2005.11.9 2005.11.10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부회장 4792만 원 환경부 2급 2005.1.31 2005.3.4 대한건설순환자원협회 회장 9288만 원 정보통신부 2급 2005.2.17 2005(취업월 미게재) 동원증권 부사장 1억3600만 원 과학기술부 2급 2004.3.8 2004.3.9 한국엔지니어링공제조합 감사 1억354만 원 보건복지부 1급 2004.3.31 2004.7 한국건강관리협회 사무총장 9896만 원 2급 2005.7.22 2005.7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 6374만 원 농림부 2급 2004.8.31 2005.1.1 농협중앙회 상무 9338만 원 2급 2004.6.30 2004.7.1 농협유통 감사 8463만 원 노동부 1급 2005.3.24 2005.8.29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 1억3000만 원 건설교통부 1급 2005.1.24 20 대한주택보증 사장 1억1795만 원 1급 2005.3.10 2005.3.14 전국버스운송조합연합회 상근부회장 8635만 원 1급 2005.3.10 2005.3.18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 9729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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