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무원 84명 퇴직전후 산하기관 취업

  • 입력 200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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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 84명이 최근 3년간 산하 기관 등에 옮길 자리를 미리 마련한 뒤 명예퇴직을 신청해 최고 1억4000여만 원까지 명예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무원의 로비 등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 관련 단체 취업을 금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또 국가공무원 가운데 명예퇴직수당을 지급할 수 없는 대상도 조사 수사 감사 등을 받는 사람 등으로 극히 제한돼 ‘선(先) 자리 확보, 후(後) 명예퇴직’을 막을 수 없는 실정이다.

▽퇴직 2개월 전에 미리 취업=본보와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실이 2003∼2005년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등 11개 중앙부처 1∼3급 공무원의 명예퇴직 현황을 조사한 결과 고위 공직자 84명이 퇴직 후 수일∼수개월 내 산하 기관 등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퇴직금에 더해 3400만∼1억4367만 원의 명예퇴직금을 받았다.

재경부 1급 출신 A 씨는 1억3000여만 원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지난해 3월 30일 퇴직했지만 하루 전에 BC카드 사장으로 취업했다.

8600만 원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지난해 3월 10일 퇴직한 건교부 1급 출신 B 씨는 퇴직 4일 후 전국버스운송조합연합회 상근부회장이 됐다. 재경부 1급 출신 C 씨는 퇴직 당일 산업은행 감사로 취업했다.

퇴직 전 소속 부처별로 보면 △산업자원부 12명 △재경부 11명 △건교부 9명 △보건복지부 9명 △노동부 9명 △정보통신부 8명 △과학기술부 8명 △환경부 6명 △농림부 5명 △문화관광부 4명 △기획예산처 3명 등이다.

이들이 취업한 곳은 공기업 외에도 한국생산성본부, 대한상공회의소, 유관 협회, 대학, 대형 법률사무소, 투자회사 등 다양했다.

정 의원은 “재직 때 미리 자리를 확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퇴직 직후 취업하겠느냐”며 “심지어 퇴직 2개월 전에 취업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무원의 로비 등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급 또는 직무분야에 종사한 공무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기업 또는 사기업의 공동이익과 상호 협력 등을 위해 설립된 법인 및 단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 관련성을 △재정 보조를 직접 제공하는 업무 △인·허가 등과 직접 관계되는 업무 △검사·감사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조세의 부과·조사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등 실무자 수준으로 제한해 사실상 고위 공무원에게는 적용이 어렵다.

퇴직 공무원이 취업하려면 1차적으로 각 부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고위 공무원은 실무 차원의 일을 하지 않는 데다 선후배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 생리상 엄격하게 적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관련 단체에 취업한 D 씨는 “많은 실무팀을 거느리는 고위 공무원에게 업무 관련성을 엄격히 적용하면 퇴직 후 취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퇴직 후 취업에 대한 2차 승인을 하는 행정자치부 윤리담당관실은 “각 부처에서 ‘문제가 없으니 승인해 달라’는 서류가 대부분”이라며 “취업이 제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또 명예퇴직금 지급의 제외 대상은 조사 수사 감사 등을 받는 사람 외에는 ‘정부 기능이 공사화 또는 민영화되는 기관에 소속되기 위해 퇴직하는 자’로 한정돼 있다.

정 의원은 “공직자윤리법 취지를 사실상 위반한 고위 공무원에게 명예퇴직금까지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원회는 “명예퇴직금은 정년까지 남은 기간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라며 “명예퇴직에 따른 조직 순환 등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위공무원 명예퇴직자 취업 사례
부처 직급퇴직일취업일취업 현황명예퇴직금
재정경제부 1급2005.1.202005.6.24보고인베스트먼트 대표1억4367만 원
1급2005.2.252005.2.25산업은행 감사1억1635만 원
1급2005.4.112005.4.13한국수출입은행 감사6014만 원
문화관광부2급2003.7.312003.8.18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운영본부 사장6626만 원
2급2005.9.92005.9.16그랜드코리아레저 이사8308만 원
산업자원부2급2004.12.172004.12.15한국철강협회 부회장1억59만 원
2급2005.11.92005.11.10한국자동차공업협회 부회장4792만 원
환경부2급2005.1.312005.3.4대한건설순환자원협회 회장9288만 원
정보통신부2급2005.2.17 2005(취업월 미게재)동원증권 부사장1억3600만 원
과학기술부2급2004.3.82004.3.9한국엔지니어링공제조합 감사1억354만 원
보건복지부1급2004.3.312004.7한국건강관리협회 사무총장9896만 원
2급2005.7.222005.7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6374만 원
농림부2급2004.8.312005.1.1농협중앙회 상무9338만 원
2급2004.6.302004.7.1농협유통 감사8463만 원
노동부1급2005.3.242005.8.29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1억3000만 원
건설교통부1급2005.1.2420

5.3.24

대한주택보증 사장1억1795만 원
1급2005.3.102005.3.14전국버스운송조합연합회 상근부회장8635만 원
1급2005.3.102005.3.18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9729만 원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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