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준우]기회의 땅에 핀 난기류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브로커들은 30∼50%가량을 떼어 갑니다. 정보도 없고 믿을 만한 사람도 없고 알릴 방법도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죠.”

‘꿈의 고객’이라 불리는 외국인 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뛰고 있는 개인병원 원장 이모 씨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중국 베이징(北京)에 피부관리클리닉을 개설했다. 날로 치열해지는 병원 간 경쟁 때문에 국내 환자 진료만으론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중국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자신이 경영하는 국내 병원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내 환자보다 비싼 진료비를 내는 외국인 환자들에게 구미가 당겨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환자를 한꺼번에 3∼5명씩 소개하는 중국인 브로커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마음은 항상 조마조마하다. “한국 연예인들이 성형수술을 받은 병원이다”라고 중국인 환자들을 속여 돈만 챙겨 달아나는 브로커 때문에 낭패를 본 병원을 여러 곳 봤기 때문이다.

외국인 환자 브로커에게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은 소형 병원만이 아니다. 대형 병원도 환자에 따라 총진료비의 5∼10%를 수수료로 준다는 것은 의료계에선 알려진 이야기다.

외국인 환자 1만 명 시대를 맞은 한국의 의료수출 현장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다. 서울시내 한 대형 병원의 외국인 환자는 2001년까지 연간 30∼40명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50명가량으로 몇 배나 늘었다. 여전히 입소문에 의지하기는 마찬가지다. 환경이 바뀌면 방식도 변해야 한다.

외국인 환자들이 집에서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면 모니터에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줄 믿을 만한 한국 병원이 나타나고, 몇 번 더 클릭해 진료 예약을 한 뒤 짐을 싸서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는 없을까. 한국 병원들은 손쉽게 환자를 유치할 수 있어서 좋고, 환자들은 브로커에게 돌아갈 몫을 할인받아 좀 더 싸게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환자와 그 가족이 관광을 한다면 ‘꿩 먹고 알 먹고’ 식의 파급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디지털 강국임을 자랑하는 한국이니 못할 것도 없다. 기술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싱가포르는 질병별로 평균 치료비, 입원비, 약값 등을 정부기관의 홈페이지에 공개해 병원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인 환자들을 더욱 끌어들이고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까지 외국인 환자 40만 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여러 부처의 협조가 필요한 계획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정책이 그렇듯이 부처 간 관계자 회의 몇 번을 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고 만다.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아 정책이 표류할 수도 있다. 기업에서는 기회의 땅에 대비한 방책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이를 보고도 당장 대응책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담당자의 목이 달아날 판이다.

병원이 환자의 출국을 보증할 것을 요구하는 비자 발급 규제, 광고 규제 등 거추장스러운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21세기는 버림으로써 얻는 시대다.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먼저 걱정하는 사고를 걷어치우자.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 사고만이 기회의 땅에 꽃을 피우게 할 것이다.

하준우 교육생활부장 ha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