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입력 2006년 7월 2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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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박영준 시정곤 등 글/264쪽·1만1500원/고즈윈

‘도구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 있다. 예술이나 기술 분야가 대표적이다. 좋은 바이올린을 찾는 전문 연주자나 좋은 사진기를 구하려는 사진 마니아들을 떠올려 보자. 멋진 내용은 좋은 형식에 담겨야 아름다움에 가까워지기에 그들의 정성은 매우 각별하다.

생각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낮은 사람은 말의 맛을 살려내기가 어렵다. 말을 제출하는 시험이 구술인 만큼 우리말의 이해는 더없이 중요하다. 이 책은 마치 인생을 성찰하는 자서전처럼 우리말을 탐색한다. 우리말이 태어나는 과정이나 성장하면서 겪었던 갈등과 사랑, 애환을 더듬는다. 다른 언어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말의 정체성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의 사람들은 언제부터 말이 통했을까. 우리들은 16세기 한글 문장도 수월하게 읽지 못한다. 다른 부족들로 건설된 삼국시대 나라들은 의사소통이 무난했을까. ‘삼국유사’에는 고구려 병사가 수년 동안 신라 군대에 들어가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 나온다. 백제 무왕이 지은 서동요를 신라 꼬마들이 부른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언어를 살피는 것은 곧 민족의 역사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말 속에는 지층처럼 삶의 면면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말은 우리를 길러낸 사회를 더 잘 보여 준다. 복잡한 친족용어가 발달한 우리말을 떠올려 보면 우리를 길러낸 문화가 말에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는 또한 세상을 만든다. 단순히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강력한 창조력을 발휘한다. 말은 호흡과 함께하므로 그 자체로 생명과 동일시된다. 우리나라에서 귀신을 물리치는 빨간 부적이나 새해에 덕담하는 풍습도 언어의 효험을 믿는 덕분이다.

한글의 성장은 무엇보다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풍요롭게 했다. 슬프게도 한글은 과거 중국어와 현대의 영어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규방의 문학이나 요리책이 한글로 작성된 것은 표현의 우수함 때문이었다. 조리고 무치고 데치는 우리의 삶은 한자보다 한글이 제격이지 않았겠는가.

그릇에 따라 요리의 맛은 달라지는 법. 이 책에 나오는 언어의 속성과 한국말의 풍부한 사례들은 차진 우리말을 유감없이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학생들도 화가가 대상을 바라보듯 우리말과의 애정 어린 교감을 만끽하기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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