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사랑 배달부’된 ‘맥가이버 아빠’

  • 입력 2006년 5월 9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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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우체국에서 연풍면 지역 우편물을 배달하는 김대중(金大中·38) 씨. 하루 100km이상 오토바이를 타고 편지와 소포 등 우편물을 배달하고 나면 어깨가 뻐근하고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퇴근 후 중요한 일이 기다린다. 배달 관할 지역의 가정에서 가져온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해야 한다. 2000년 집배원 일을 시작한 뒤 이듬해부터 시작한 일이다.》

괴산군 칠성면이 고향인 김 씨는 충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학습지 교사생활을 하다 1997년 경기도에서 보습학원을 차렸다.

비교적 안정적이던 학원은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설상가상 고향의 부친이 암 수술을 받자 김 씨는 귀향을 결심했다.

1999년 부친 병간호와 농사일을 병행하던 중 괴산우체국 직원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해 합격했다.

우편배달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정신지체 장애인의 집에 배달을 갔다가 고장난 컴퓨터가 방치된 것을 보고 말끔히 고쳤다.

배달 가는 가정마다 고장 난 컴퓨터가 눈에 띄었다. 군청에서 기증받아 관내 장애인이나 소년 소녀가장,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보낸 중고 컴퓨터였다.

중고품이라도 처음에는 사용이 가능했지만 대부분 얼마 안가서 고장이 났다.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손을 놓고 있었다.

김 씨는 배달을 마친 뒤 고장 난 컴퓨터를 집으로 싣고 와 전문 서적을 뒤져가며 밤새 수리해 다음날 전달했다.

컴퓨터 수리에 필요한 부품은 수첩에 꼼꼼히 적어 둔 뒤 휴일에 도시로 나가 구입했다.

연립주택 2층 전세방은 고장 난 컴퓨터로 가득했지만 아내와 두 딸은 불평보다는 ‘맥가이버’ 아빠를 응원했다. 컴퓨터 사용법을 잘 모르는 주민을 위해 수시로 ‘선생님’ 역할도 맡았다.

이 같은 선행이 소문나면서 인근 칠성면에서 집배원일을 하는 동생(원중·35)에게 컴퓨터를 맡기는 주민까지 생겼다.

김 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재주로 지역 주민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며 “농촌 주민을 위한 중고 컴퓨터 기증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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