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포착한 정의선사장 승계자금 조성과정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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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 안됩니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이 만든 수백억∼수천억 원대의 펀드를 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하나증권 건물 내 윈앤윈21 사무실. 4일 오전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뒤 직원들이 외부인 접근을 막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종승 기자
“출입 안됩니다”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이 만든 수백억∼수천억 원대의 펀드를 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하나증권 건물 내 윈앤윈21 사무실. 4일 오전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뒤 직원들이 외부인 접근을 막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종승 기자
검찰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가 정의선(鄭義宣) 기아자동차 사장을 향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정 사장이 비자금으로 만들어진 펀드를 운용해 수백억∼수천억 원대로 추정되는 불법 이익을 얻은 단서를 검찰이 포착함에 따라 정 사장이 사법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그룹 후계 구도 차질 빚을 수도=지금까지 현대차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비자금과 로비 의혹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용처를 밝히기 위해 이주은(李柱銀·구속) 글로비스 사장 등 임원들을 주로 조사하고 있다. 정 사장은 아직까지는 비자금 조성 및 사용과 관련해 의심을 받고 있는 정도였지 사법처리 대상으로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4일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현대차그룹이 정 사장의 경영권 확보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펀드를 이용해 수백억∼수천억 원대로 추정되는 불법 이익을 얻은 단서를 검찰이 포착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펀드를 운용한 윈앤윈21 등 5개 투자회사를 검찰이 4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행보에 비춰 볼 때 검찰은 현대차그룹과 정 사장의 혐의를 입증할 정황과 단서를 이미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만간 정 사장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 정 사장이 개입한 혐의가 입증되면 그는 사법 처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구도가 흔들릴 수도 있다.

▽재벌 편법 상속의 새 방법으로 떠오른 ‘펀드’=이번 사건에서 주요한 포인트는 세 가지다. 현대차그룹이 정 사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것과 비자금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비자금을 세탁했다는 점, 비자금을 늘리기 위해 펀드와 현대차그룹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정 사장 자금을 운용한 5개 투자회사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과 채권 등을 매입해 수익을 올리는 과정에서 해당 계열사의 내부(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현대오토넷 등 현대차그룹에 합병되거나 인수된 기업들에 대한 정보도 투자회사에 미리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 사장의 펀드를 운용하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가 경영 상황은 일시적으로 좋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인수를 계획한 기업의 지분을 미리 매입했다가 인수 후 지분을 팔아 큰 차익을 남기는 구도다.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현황=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정 사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정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대해 현대차그룹이 ‘노골적인 밀어주기’를 한 이유다.

현대차그룹의 지분 구조는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의 38.67%를 소유하고 있고,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의 18.15%를, 현대모비스는 다시 현대차 지분의 15.03%를 소유하고 있는 순환지배구조다. 또 현대제철은 현대모비스 주식의 6.44%를 보유하고 있고 기아차는 현대제철 주식의 21.39%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나 기아차 현대모비스 주식 중 한 곳의 주식만 많이 가지고 있어도 모든 주요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식이 거의 없는 정 사장은 기아차 주식을 집중 매집하는 방법으로 그룹 경영권 장악에 나섰다.

정 사장은 지난해 글로비스와 본텍 지분을 판 돈 등으로 현대캐피탈로부터 기아차 주식 690만4500주를 사들여 현재 1.9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아직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글로비스와 본텍 지분을 팔아 기아차 주식 매입 자금을 마련한 정 사장이 앞으로도 비슷한 방법으로 재원을 충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사장은 현재 글로비스 31.88%, 이노션 40%, 엠코 25% 등의 계열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과 관련해 안정적인 10%대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추가로 6000억∼1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비자금을 이용한 ‘펀드’ 운용을 추진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 압수수색 업체와 현대車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4일 압수수색을 한 5개사는 모두 부실기업을 사들인 뒤 기업 가치를 높여 되파는 기업구조조정 전문 회사들이다.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중에는 비자금 마련, 경영권 승계,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자문에 응하는 곳도 적지 않다. 기업이 은밀한 돈을 맡기면 불린 뒤 그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압수수색을 당한 회사 가운데 윈앤윈21과 윈앤윈21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는 원래 한 회사였다가 2003년 모(母)회사와 (子)회사로 분할돼 사실상 한 회사로 볼 수 있다.

큐캐피탈홀딩스와 윈앤윈21은 여러 경로로 현대차그룹에 도움을 줬고 씨앤씨캐피탈과 문화창업투자는 오히려 현대차그룹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다.

○ 현대차 계열사 주식 비싸게 사주고

큐캐피탈홀딩스는 2004년 삼일회계법인과 함께 법정관리 중인 한보철강의 매각 주간사회사를 맡았다. 그리고 한보철강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차그룹 계열인 INI스틸(현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 회사 유모 대표는 현대자동차 국제금융부장과 현대증권 M&A본부장 등을 지냈다.

윈앤윈21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는 2001년 3월 22일 인천제철(현 현대제철)로부터 그룹 계열사인 삼표제작소 주식 26만 주(44.49%)를 110억 원(주당 4만2060원)에 샀다. 당시 삼표제작소 주가는 고작 2만5000원 선이었다.

윈앤윈21은 1999년 10월 현대차그룹이 계열사 위아(옛 기아중공업) 지분 76%를 팔 때 지분 32%를 인수했다. 윈앤윈21은 이 지분을 다시 큐캐피탈홀딩스에 넘겼고 2001년 말 큐캐피탈홀딩스는 이를 다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팔았다. 3년 동안 주식이 돌고 돌아 원 주인에게 돌아간 셈이다.

○ 현대차는 씨앤씨캐피탈 지원하고

씨앤씨캐피탈과 문화창업투자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이다.

두 회사는 2000, 2001년 주식 및 채권을 현대차와 거래하면서 부당 내부거래를 한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받은 일이 있다.

당시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현대차는 이들 회사와 채권을 거래하면서 싼 가격에 회사채를 팔았다가 비싼 가격에 되사주는 방법으로 두 회사를 지원했다.

또 현대차는 2001년 1월 씨앤씨캐피탈로부터 INI스틸 주식을 살 때 시가보다 6.3% 높은 가격을 쳐줬다. 약 24억 원의 웃돈을 얹어준 셈이다.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압수수색 투자사 관계자 소환조사 영장 청구할수도”

채동욱(蔡東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5개 금융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압수수색한 배경을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수사 상황은….

“윈앤윈21, 윈앤윈21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문화창업투자, 씨앤씨캐피탈, 큐캐피탈홀딩스를 오전부터 압수수색했다. 회사 관계자 몇 명을 데려다 조사하고 있다. 압수수색은 현대차그룹 비자금 수사를 위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기업구조조정과 관련이 있나.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이 기업들의 역할이 있었나.

“그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한 회사들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가.

“계열사는 아니다.”

―글로비스 압수수색에서 관련 단서가 나왔나.

“일부 연관되는 부분이 있을 거다.”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 창구이거나 비자금이 흘러간 통로가 되는 회사들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닐 수 있는데 넓은 의미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되는 회사들이다. 비자금이 흘러 나간 창구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소환 조사하고 있는 회사 관계자들 (구속 영장 청구 등) 신병처리 가능성이 있나.

“배제하진 못한다.”

―이번 압수수색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출국과 관련이 있나.

“전혀 관련 없다. 검찰 수사는 일정대로, 준비된 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검찰은 정 회장의 미국 체류 일정을 파악하고 있나.

“말할 수 없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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