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외국인 총장 초빙의 虛와 實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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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히딩크’를 기대하는 분위기 속에 2004년 7월 취임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로버트 로플린 총장이 2년 만에 재계약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다.

‘본프레레’로 확인됐으니 이제라도 과감하게 교체해야 한다는 요구와 히딩크도 처음에는 기대에 못 미쳤으니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있는 형국이다.

다만 그가 지금까지 만족할 만한 리더가 아니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우선 그의 거친 입과 돌출행동이 불신을 자초했다. KAIST 교수협의회는 최근 연임 반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부적절했던 그의 어록을 제시했다.

“한국은 부패해 있고 엉터리다. KAIST 교수와 학생도 엉터리다….”(2005년 4월, 미국 존스 홉킨스대 물리학과에서)

“KAIST는 별것 아니다.”(2005년 가을, 일본의 KAIST격인 NAIST에서)

또 KAIST 교수들은 그동안 로플린 총장에게서 “당신은 노벨상 받아 봤느냐”는 등의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한국에 대한 인식도 문제였다. 그는 2004년 12월 삼성전자 임원단 강연에서는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중국에 떨어지기 때문에 제조업과 관련된 과학기술 투자를 포기하고 서비스 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 초청자를 곤혹스럽게 했다.

KAIST의 막내 교수인 정재승(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는 “로플린 총장의 두 가지 불행은 그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과 KAIST에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로플린 총장에게 여론을 전달하고 한국의 학문적 풍토를 알려줄 ‘보좌역’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학교 측에 총장의 입장을 물어보면 “직접 그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답변하곤 했다.

과학기술부의 이벤트성 총장 초빙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로플린 총장의 초빙은 당시 KAIST 총장추천위원회가 다른 후보들을 추천해 놓은 상태에서 ‘낙하산식’으로 진행됐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외국인 총장제도의 막이 열리고 있다. 로플린 총장의 재계약 논란은 즉흥적인 정책의 실패인지, 외국인 총장제의 실패인지 면밀히 따져보려는 노력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가 재계약이 되는 안 되든 이번 파동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대전에서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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