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협 대학평가 신뢰 흔들…대학들 잇단 거부

  • 입력 2006년 3월 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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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대학 평가를 받지 않기로 결정해 대교협의 대학 평가가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다. 또 대교협이 지난달 16일 대학 평가 결과를 발표했지만 채점 오류로 최우수 대학인 상명대를 우수 대학으로 발표하는 바람에 평가의 신뢰도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획일적 평가 신뢰도 없다”=대학들은 상명대의 평가 오류는 그동안 획일적으로 진행해 온 대교협 평가 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교협은 1982년부터 대학 평가를 시작했고 1992년부터 대학평가인정제로 전환해 2000년까지 1주기 대학 종합 평가를 마쳤다. 2001년부터 2주기 대학 종합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교협 평가 체제가 수치에 의한 정량(定量)적 평가인 데다 대학 규모, 지역 등 대학별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교수로 구성된 평가위원의 전문성 부족과 2, 3일간의 짧은 현장 평가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2003년에는 경제학 물리학 문헌정보학 교수들이 집단으로 평가를 거부하는 바람에 평가가 약식으로 이뤄졌고 지난해에는 사회학 심리학 교수들이 평가를 거부했다.

서울대 김종원(金鍾源) 교수는 “2004년 기계공학 분야 평가에서 서울대가 15등으로 나왔는데 누가 이런 평가를 믿겠느냐”며 “대교협 평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학들은 대교협이 대학을 평가하는 데 태생적 한계가 있는 만큼 제3의 독립된 평가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교협 관계자는 “회원 대학의 눈치를 보느라 순위를 내놓지 못한다”며 “결과가 발표되면 대학들의 항의로 일을 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평가 대비 편법 동원=지방 H대 교수들은 평가를 앞두고 소장 중인 장서를 모두 도서관으로 옮긴 뒤 딱지를 붙이고 학교 직인을 찍었다. 학생 1인당 장서 수와 최근 3년간의 도서 구입 단가에서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수법이었다.

전임교수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신분 보장이 안 되는 ‘비정년 보장 전임교수’, 초빙교수, 겸임교수, 석좌교수 등 임시직 교수를 늘리기도 한다. 평가를 받는 학과에 예산을 몰아줘 좋은 평가를 받은 뒤 다음 해에 예산을 깎기도 한다.

평가 경험이 있는 K대의 교수는 “2, 3년 평가지표를 바짝 관리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교수 사회에서는 이를 ‘침소봉대’로 부른다”며 “현장 실사 때 허위 또는 과장 자료를 발견해도 교수들끼리 서로 따지기 어려워 그냥 점수를 짜게 준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량적 평가는 통계 기준이라도 있지만 ‘발전전략’ ‘리더십’ ‘경영 마인드’ 등 정성(定性)적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연 지연을 총동원해 평가위원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혈안이다.

대교협은 대학 자체 평가연구보고서를 기준으로 서면평가를 한 뒤 2, 3일간 현장 방문 평가를 한다. 하지만 6명의 평가위원이 짧은 기간에 보고서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평가위원을 지낸 한 대학교수는 “추천 교수들을 대상으로 이틀간 워크숍을 하고 평가위원으로 위촉한다”며 “300쪽이 넘는 보고서를 보고 여러 행정 업무가 복합된 대학을 (이틀 만에) 제대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언론사 평가도 문제”=대학들은 대학별 등수를 공개하는 한 일간지의 대학 평가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제기했다.

서울의 모 대학 기획실장은 “전담인원이 5, 6명인 대학평가팀과 교수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평가 지표를 만든 뒤 대학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평가한다”며 “그러나 대학이 제출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실사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평가를 준비했던 서울 K대의 한 대학원생은 “하나의 논문을 영어로 제목만 바꾸거나 짜깁기해 논문 수를 늘렸다”며 “실사를 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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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어떻게 하나…외부평판도 반영▼

미국의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매년 시행하는 대학평가에 교수들의 동료 평가를 가장 중요하게 반영한다. 또 기업체 인사담당자의 견해, 전공 관련 취업률 등 질적 평가지표를 중시한다.

영국 더타임스는 매년 각 학교 학과장들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대학 순위를 매긴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대학총장, 수험생 등에게 각 대학의 평판을 물어 이를 세분화한 순위를 작성한다. 고교 진학담당 교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대학을 묻기도 하고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선호하는 대학을 조사하기도 한다.

이같이 외국의 대학 평가는 외부에서 바라본 질적 지표를 많이 활용한다. 이 점이 대학 내부 자료인 논문 수, 장서 수 등 양적 지표에 의존하는 한국과는 다르다.

또 각국은 대학 평가의 난립을 막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통합적 평가기관을 구성하고 있다.

미국은 3000여 개 대학과 80여 개 전공별 지역별 평가인증협의회가 연합해 고등교육평가인정위원회(CHEA)를 운영한다. 중복 평가를 막고 평가 기준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국제 세미나도 개최하고 있다.

영국은 고등교육품질보증기구(QAA)를 운영한다. 대학 평가와 재정 지원을 연계해 대학의 자발적인 평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일본은 대학평가·학위수여기구(NAID)를 운영해 주제별 평가를 함께 실시한다. 항목은 교육 서비스의 사회 공헌, 국제 연대 및 교류 활동 등으로 대학과 사회의 교류를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외국인 전문가 참여 독립 평가기관 추진▼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 평가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나 대학으로부터 독립적이고 국제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한국고등교육평가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회에 ‘고등교육평가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상정했고 내년 설립을 목표로 금년 4월까지 통과시킬 계획이다. 평가전문가 45명, 행정직 10명 등 55명으로 출발하고 외국 전문가도 초빙할 계획이다.

평가원 설립 추진은 대교협의 평가 신뢰도와 무관하지 않다. 대교협 평가가 지역특성이나 대학규모 등을 고려하지 않아 불신을 받고 있는 만큼 독립적인 전문평가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

교육부는 여러 곳에 분산된 평가기능을 체계화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평가체제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대교협 업무인 대학종합평가 학문분야 평가에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 평가도 평가원에 맡길 계획이다.

교육부는 공학 간호학 의학 경영학 건축학 이외의 학문 분야는 민간 인증기관이 없어 대교협이 학문 분야 평가를 당분간 계속하도록 한다는 것.

당연히 대교협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교협 관계자는 “대교협의 평가체제는 매우 우수해 중국 일본 등 10여 개국에서 평가 방법을 벤치마킹해 갈 정도”라며 “평가원이 외국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보는 것은 모르지만 대학 평가에 외국인을 참여시킨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교육위원회 이주호(李周浩) 의원은 “대학 평가에 정부가 나서면 평가지표 등을 통해 국가가 간섭하게 되는 만큼 민간 기구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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