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대신 마우스로 돈 벌었죠”

  • 입력 2006년 1월 1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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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에서 탈출해 전자상거래로 부농의 꿈을 키워 가는 전남 광양시 진상면 백학동 마을 주민들. 설 대목에 출하할 곶감을 다듬기 전에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광양=정승호기자
컴맹에서 탈출해 전자상거래로 부농의 꿈을 키워 가는 전남 광양시 진상면 백학동 마을 주민들. 설 대목에 출하할 곶감을 다듬기 전에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광양=정승호기자
전남 광양시 진상면 백학마을은 광양∼경남 하동군 간 국도 2호선에서 백운산 계곡을 따라 8km를 올라가야 나오는 산골 마을이다. 지리산에는 ‘청학동’, 백운산에는 ‘백학동’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두메산골.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 덕분에 봄이면 ‘신비의 약수’로 불리는 고로쇠 수액이 나오고 고사리와 매화나무가 지천이다. 산이 깊어 밤, 단감, 표고버섯 주산지로도 유명하다.

2년 전부터 산골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농가마다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고 무공해 상품이 전자상거래를 통해 팔리고 있다.

6일 오후 백학마을 곶감 건조장.

작목반장 김호심(51·여) 씨의 휴대전화에 ‘백운곶감(대봉 2kg) 1건 주문, 5만 원 입금 완료’란 문자메시지가 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주민이 인터넷으로 곶감을 주문한 것.

김 씨는 곧장 집으로 가 마을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주문자에게 ‘폭설로 곶감이 잘 마르지 않아 11일경 배송이 가능하다’는 e메일을 보냈다. 30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이 전국에서 으뜸가는 전자상거래 마을로 자리 잡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2003년 5월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마을에 PC 교육장인 정보센터가 문을 열고 초고속통신망이 구축됐다. 하지만 전체 주민의 80% 정도가 60세 이상 노인이어서 인프라 활용은 쉽지 않았다.

정보화마을을 꾸려 가는 운영위원회는 ‘맞춤식 교육’으로 컴맹 탈출에 나섰다. 외부 강사들이 노인은 오전에, 부녀자는 오후에, 청장년은 밤에 ‘맨투맨 식’으로 가르쳤다. 컴퓨터 자판을 어느 정도 익히면 인터넷 검색으로 넘어갔다.

흥미를 갖도록 농산물 가격정보를 어떻게 보는지, 트로트는 어디서 듣는지, 사이버 고스톱은 어떻게 치는지를 알려줬다. 마을 PC경진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문화상품권을 줬다.

주민들은 점점 흥미를 느꼈다. 교육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 복습하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정보센터 강사를 찾아 궁금증을 해결했다. 인터넷에서 좋은 글이나 건강정보를 보면 출력해서 돌려봤다.

ID가 ‘매화아가씨’인 강경자(65·여) 씨는 “채팅방에서 젊은 사람과 글을 주고받는데 환갑이 넘었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채팅방을 빠져나간다”며 웃었다.

김성태(68) 씨는 “손자와 e메일을 주고받고 유명 교회 목사의 설교를 안방에서 언제든지 들을 수 있어 좋다”며 “부부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은 전자상거래를 처음 시작한 2004년에 곶감, 고사리, 녹차 등 2600만 원어치를 팔았다. 지난해에는 1169건의 주문이 들어와 91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정보화마을이라는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오프라인 판매도 함께 늘어 가구당 연간 소득이 3000만∼4000만 원에 이른다.

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인 조기옥(52) 씨는 “인터넷이 농촌을 살찌우고 도시와 농촌의 정보 격차를 줄여 주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양=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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