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법무 “강정구 구속말라” 지휘권 발동]金총장의 선택은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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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도 거부도 쉽지 않다. 생각이 너무나 많다.”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는 12일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이 동국대 강정구(姜禎求·사회학) 교수에 대해 검찰 의견과는 달리 불구속 수사 지휘를 내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거부는 곧 사퇴”=법 해석상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검찰청법에는 “지휘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으며 검찰총장이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진 않고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이 이를 거부할 경우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형식상 지휘-복종 관계에 있는 법무부 장관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검찰총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정구교수 구속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찬성
반대
잘 모르겠다


▶ 난 이렇게 본다(의견쓰기)
▶ “이미 투표하셨습니다” 문구 안내
일본에서 검찰 지휘권이 발동된 ‘조선의옥(造船疑獄)’ 사건 당시 수사 검사를 지냈고 나중에 일본 검사총장(검찰총장)을 지낸 이토 시게키(伊藤榮樹) 씨는 회고록 ‘추상열일(秋霜烈日)’에서 “지휘권 발동을 거부하면 검사총장은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이것이 일본에서는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거부와 사퇴 모두 깊은 상처 남길 듯=김종빈(金鍾彬) 총장은 이날 오후 6시 30분 천 장관의 서면 지휘서를 받고 정상명(鄭相明) 대검 차장, 권재진(權在珍) 대검 공안부장 등과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김 총장은 “사퇴해야겠다”고 얘기했으나 간부들은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이 지휘권 발동을 수용하고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할 경우 법무부와 대검의 갈등은 잠잠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김 총장 본인과 검찰 조직 내부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스스로 밝혔듯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중대 사안’인 강 교수 사건에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을 바로 수용하는 것은 검찰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장 검사들 사이에서는 김 총장이 사의 표명을 하면서 맞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김 총장이 그대로 수용할 경우 앞으로 일선 검사들에 대한 김 총장 자신의 지휘권이 크게 약화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거부와 사퇴’도 만만치 않다. 김 총장 자신이야 ‘장렬하게 전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후 검찰이 겪게 될 수난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형사소송법 개정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정치 권력의 압력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김 총장이 사퇴할 경우 천 장관도장관직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은 검찰 내부에 달려=검찰 안팎에서는 검찰 내부의 분위기와 여론에 따라 김 총장이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의 동요가 심각하지 않을 경우 김 총장은 천 장관의 지휘를 받아들여 불구속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셀 경우 김 총장도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지는’ 선택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千법무 강경카드 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12일 일선 검찰이 수사 중인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해 ‘지휘권 발동’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정치인 출신 천 장관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공안 사건에 대해 ‘불구속 수사’ 지휘를 하면서 검찰의 반발까지 더해져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치적 계산=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강 교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구속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한 직후 이뤄졌다.

천 장관의 한 측근은 “구속 사유가 안 되는 만큼 일단 불구속으로 수사해서 범죄 구성 요건이 되면 기소해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측근은 “기본적으로 천 장관이 그동안 줄기차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온 ‘정치적 소신’이 작용한 것”이라며 “소모적인 국론 분열과 대립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좀 더 직접적으로는 여권 지도부와 청와대의 ‘뜻’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권 지도부와 청와대는 이미 수일 전부터 검찰에 “강 교수 구속 수사를 신중히 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도 청와대와의 교감 하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여권이 사활을 걸고 밀어붙이고 있는 과거사 청산 작업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이 국가정보원, 경찰, 검찰, 사법부 등에 대해 과거사 청산 작업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것.

또 청와대와 여권으로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탈한 지지 세력을 재결집하는 효과도 염두에 둔 듯하다.

▽사전 조율?=천 장관은 이날 오후 이종백(李鍾伯) 서울중앙지검장과 만나 ‘신중한’ 수사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김종빈 검찰총장과는 40여 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나 김 총장은 일선 검사들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검장 역시 비슷한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천 장관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뇌부는 ‘법과 원칙대로’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검찰 수뇌부는 “법무부가 불구속 수사 의견을 관철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면 법에 정해진 지휘권을 행사하라”는 의견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과 법무부 모두 ‘각자의 선택’을 하자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천 장관으로선 자신의 친정인 여권과 일부 진보 진영 시민단체의 압력이 거센 상황에서 검찰 지휘부와의 ‘견해 차’가 좁혀지지 않자 곧바로 자신의 법적 권한 행사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천 장관의 지휘 서신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 같은 방침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日 1954년 한차례 발동, 총장 수용…국민 분노 폭발▼

검찰지휘권은 건국 이후 한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 일본에서는 1954년 그 유명한 ‘조선의옥’ 사건에서 딱 한 차례 있었다. 일본 검찰청법도 제14조에서 검찰지휘권을 규정하고 있다.

조선의옥 사건은 일본 조선업자들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조선업체에 대한 정부 융자금의 이자율을 낮춰주도록 로비를 하고 그 과정에서 뇌물이 오간 사건이다. ‘의옥’은 ‘스캔들’ 또는 ‘게이트’라는 뜻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도쿄(東京)지검 특수부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자유당 간사장을 체포하는 등 집권당의 핵심 지도부를 파고들자 이누카이(犬養健) 법무대신(법무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해 수사를 중단시켰고 검사총장(검찰총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검사들은 “검찰 최대의 치욕”이라며 분노했고 일본 검찰도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 지휘권 발동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이누카이 법무대신이 사퇴했고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도 얼마 안 가 붕괴됐다.

한국에서는 1949년 이인(李仁) 법무부 장관이 최대교(崔大敎) 서울지검장에게 이모 장관을 기소하지 말라고 구두로 지휘한 적이 있는데, 최 지검장은 “기소 불기소는 검찰 고유권한”이라며 거부하고 불구속 기소했다.

2003년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사건 때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일었으나 결국 “검찰 의견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지휘권 발동은 하지 않았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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