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봐서라도 골육상쟁 그만”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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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상쟁(骨肉相爭).’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 검찰수사로 번진 두산그룹 사건을 두고 나온 말이다. 109년 역사의 두산그룹은 한때 ‘화목한 가족경영의 대표 기업’으로 알려졌지만 형제들 간의 폭로와 비방으로 얼룩지면서 하루아침에 ‘골육상쟁’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법원에서는 이처럼 재산을 둘러싼 형제자매들 간의 다툼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판사들은 “형제간의 분쟁이 사건 수도 많지만 남남끼리 벌이는 다툼보다 더 치열해 조정이나 화해는 꿈도 못 꾼다”고 말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강민구·姜玟求)가 9일 판결을 내린 자매들 간의 재산 다툼도 전형적인 경우. 맏딸인 김모(58·여) 씨는 부모가 남긴 아파트 매각 대금 2억6000만 원에 대해 “애초에 내가 드린 돈으로 산 아파트이니 1억5000만 원을 돌려달라”고 동생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은 원고 김 씨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여느 민사재판에서와는 다른 장면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자매간의 우애가 영원히 끊길까 걱정되니 다툼은 제발 그만두라”는 권고와 함께 고려시대와 옛 중국의 격언을 소개했다.

‘형제가 황금 한 덩이씩 지니고 길을 가다 강가에 이르자 동생이 금덩이를 물에 던졌다’는 고려 공민왕 때의 ‘형제투금(兄弟投金)’ 일화가 먼저 소개됐다. 재판부는 ‘금덩이 때문에 평소 존경하던 형에게 시기와 질투가 생겼으니 금을 강물에 던져 버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한 동생의 말을 강조했다.

‘양봉제비(兩鳳齊飛·두 마리의 봉황새가 나란히 나아간다는 뜻으로 형제가 함께 잘 된다는 뜻)’ ‘여족여수(如足如手·형제는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팔다리와 같다)’ 등 중국의 옛 격언 5편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여러분이 낳은 자식세대들을 위해서라도 골육상쟁을 그만두라”며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명복을 비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선고 결과에 구애받지 말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 보기 바란다”고 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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