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이란-이라크 8년전쟁 종식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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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중동에서는 2명의 지도자가 등장했다. 그들의 성향은 크게 달랐지만 중동의 패권을 노리는 야망은 비슷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그의 야망은 ‘정치적’이었다.

이해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미국-이스라엘 동맹에 맞서 아랍의 결속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 무하마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화해하면서 상실한 아랍 지도력을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야심이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 이란 지도자. 그의 야망은 ‘종교적’이었다.

같은 해 그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워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몰아냈다. 이슬람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혁명수출 정책’을 들고 나왔다. 주변 중동국가들에 이슬람 정통주의를 전파시켜 세속주의적 지배체제를 몰아내고 혁명정권을 세우겠다는 야심이었다.

1980년 후세인과 호메이니의 야망은 충돌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진 것이다.

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두 나라 국경선을 따라 흐르는 샤트 알 아랍 수로의 영유권. 이라크는 수로의 공동 영유권을 파기하고 단독 소유를 주장하며 이란에 선제공격을 가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누적된 민족적 종교적 갈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란-이라크전은 호메이니-후세인의 패권 전쟁이자 페르시아족(이란)-아랍족(이라크)의 대립이었으며 시아파(이란)-수니파(이라크)의 충돌이기도 했다. 양국 간 뿌리 깊은 적대감은 전쟁의 장기화를 몰고 왔다. 전쟁은 장장 8년을 끌었다.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전쟁은 끝났다. 전쟁 후반부로 가면서 이란과 이라크는 서로 상대국의 영해를 통과하는 유조선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전략을 택했다. 미국 소련 등 강대국들은 자국의 석유 공급이 위협받자 두 나라에 전쟁을 끝내라는 압력을 넣었다. 1988년 8월 20일 이란과 이라크는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전쟁은 두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사망자만도 100만여 명.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로 분쟁도 해결되지 못했고 민족적 종교적 갈등의 불씨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호메이니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 사망했다. 후세인은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걸프전쟁을 일으켰다가 미국의 미움을 사게 돼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란-이라크전은 지도자들의 무모한 야망이 국가와 국민을 파국으로 몰고 간 전쟁이었다. 8년간 치열하게 싸웠지만 승자는 없이 패자만을 남겼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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