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속 고단한 검사들의 24시

  • 입력 2005년 7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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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가방 들고 집으로주말을 하루 앞둔 8일 밤 대전 서대전역을 출발해 고속열차 편으로 서울 용산역 플랫폼에 도착한 대전지검 최지석 검사(왼쪽)와 김주선 공안부장이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고 있다. 어깨에 메고 손에 든 빨래가방은 ‘이산가족’의 상징이라고 검사들은 말한다. 원대연  기자
빨래가방 들고 집으로
주말을 하루 앞둔 8일 밤 대전 서대전역을 출발해 고속열차 편으로 서울 용산역 플랫폼에 도착한 대전지검 최지석 검사(왼쪽)와 김주선 공안부장이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고 있다. 어깨에 메고 손에 든 빨래가방은 ‘이산가족’의 상징이라고 검사들은 말한다. 원대연 기자
“1995∼97년 나는 이산가족이었다. 근무지는 서울이었지만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부산에 살림을 차려 놓고 주말마다 부산으로 향했다. 멀쑥한 양복 차림과 달리 가방엔 빨랫감과 반찬통이 가득했다. 한번은 공항 입구에서 가방 지퍼가 고장나면서 빈 반찬통과 빨래가 쏟아졌다. 내 신세가 처량했다.”

김종로(金鐘魯) 부산지검 특수부장이 들려주는 ‘검사 애환기’다.

정치권 등에서는 “검찰에 너무 많은 권력과 권한이 집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적에 공감한다.

그러나 ‘권력의 집중’과는 정반대로 대부분의 검사들은 ‘삶’이 분산돼 있다. 1, 2년마다 한 번씩 근무지를 옮기는 ‘근무지 이동’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데다 자녀들 교육 문제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국산 기러기 가족’이 될 수밖에 없다. 분산된 삶을 사는 그들에겐 어떤 애환이 있을까.

▽“아플 때가 가장 서럽다”=검사 27년째인 김종빈(金鍾彬) 검찰총장은 “‘나홀로’ 생활이 가장 힘들 때는 아플 때”라고 단언한다. 김 총장은 2000년 전주지검장 시절 맹장염인 줄 모르고 관사에서 혼자 이틀을 앓다가 수술실에 들어갔다.

▽‘라면의 추억’=혼자 사는 남자 검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하루 세 끼 챙겨 먹기.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하면 되는데 저녁이 가장 힘들다. 혼자 식당에 갈 땐 문을 등지고 앉아 신문을 읽으며 먹었다. 처량하게 보일까 봐….” 정동민(鄭東敏)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장의 얘기다.

사 먹는 밥에 질릴 때도 많다. 이때는 라면이 해결사. 김진모(金鎭模) 대검 마약과장은 “한 달에 라면 한 박스 반을 먹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네 집 살림도=여검사들에겐 육아 문제가 가장 큰 고충. 부부 검사인 한 여검사는 한때 서울, 대전, 전주, 광주의 ‘네 집 살림’을 했다. 자신과 남편의 근무지가 서로 다른 데다 두 아이를 시댁과 친정에 각각 따로 맡겨 놓았기 때문. 이 여검사는 “주말엔 4곳 중 한 곳을 찍어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고 말했다.

큰맘 먹고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떠나도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곽상욱(郭相煜) 창원지검 차장은 큰아들이 초등학교 때 네 번 전학했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이 “이젠 아빠를 따라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떠나는 생활이 싫었기 때문.

집 문제도 고충이다. 지방의 한 8년차 검사는 “집 문제 때문에 일부러 관사가 있는 지방 근무를 세 번째 자원했다”며 “전세금이 없어 관사가 배정될 때까지 아내를 처갓집에 보내고 여관에서 지내는 젊은 남자 검사도 꽤 있다”고 말했다.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1, 2년마다 ‘둥지’를 바꾸고 가족과 떨어져 한 달에 200건씩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검사들의 삶은 분명 외롭고 힘들다. 이들에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나서면 이런 고민은 해소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검사들은 외롭고 힘든 삶을 선택한다. 왜일까? ‘집중된 권력’ 때문일까, 아니면 사명감 때문일까.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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