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예산 엉뚱한 곳으로 샌다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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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면 임자

서울 성북구에 사는 장애인 김모(33) 씨는 지난해 정부가 지급한 ‘복지신용카드’로 액화석유가스(LPG) 1620만 원어치를 주유했다. LPG차량 연비를 따져보면 1년간 11만8076km를 주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실 김 씨의 복지신용카드는 친척과 친구들이 더 많이 이용했다. 정부가 장애인에게 주는 LPG L당 280원씩의 보조 혜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공돈 준다는데…

경기 용인시에서 연간 매출액 100억 원 규모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67) 씨는 올해 초 동사무소에 교통수당 신청서를 냈다. 용인시가 3개월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3만6000원씩 주는 버스비 보조금을 타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재산과 소득이 많아 교통비를 타기가 좀 민망했지만 공돈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복지 예산이 새고 있다. 엉뚱한 대상에 지원하거나 관리 잘못으로 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기획예산처가 밝힌 ‘2005∼2009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시안’에 따르면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정부 재정지출은 올해 48조7060억 원에서 2009년 69조4795억 원으로 42.65% 늘어난다.

그러나 이렇게 나간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독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예산을 늘리기에 앞서 새는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文亨杓) 재정공공투자관리 연구부장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대상자 선정 오류로 복지예산의 20%는 잘못 쓰이는 것으로 추정한다”며 “사후 관리가 안 되는 한국에서는 낭비되는 돈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 관련 예산과 기금이 주로 새는 분야는 △취약계층 지원 △고용 안정 △건강보험 보조 △임대주택 건설 등이다.

보건복지부는 2000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매년 최저생계비 이상을 벌면서도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등록해 정부 보조금을 탄 4051가구를 적발해 69억 원을 환수했다.

산업자원부가 서민들을 위해 지원하는 연탄보조금도 마찬가지. 정부는 연탄 1장에 절반 가격인 300원을 보조해 준다. 그러나 이 연탄의 상당 부분은 서민들이 아니라 기업형 화훼농가가 비닐하우스 난방을 하는 데 사용된다.

최근 고유가로 등유 대신 연탄을 사용하는 화훼농가가 많아져 올해 2011억 원인 연탄 보조금은 내년에 3134억 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또 감사원이 최근 병원과 의원 등 696개 요양기관의 2003년 결산 자료를 조사한 결과 535개 기관이 124억8800만 원의 보험급여를 부당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대 박능후(朴陵厚·사회복지학) 교수는 “복지예산은 한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힘들다”며 “사후 감독에 다소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지원 대상을 세밀하게 가리는 등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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