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100년]고려대 “이름만 빼고 다 바꾼다”

  • 입력 2005년 5월 3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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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정문에서 바라본 본관 쪽 모습. 정면에 고딕양식의 본관 건물이 있고 그 앞에 2002년 새로 조성한 중앙광장이 펼쳐져 있다. 사진 제공 고려대
고려대 정문에서 바라본 본관 쪽 모습. 정면에 고딕양식의 본관 건물이 있고 그 앞에 2002년 새로 조성한 중앙광장이 펼쳐져 있다. 사진 제공 고려대
《‘막걸리가 숙성돼 와인이 됐다?’ 지난해 7월 고려대가 개교 100주년 기념품을 깜짝 발표했다. 기념품은 프랑스의 메도크 지방에서 생산한 ‘라 카르돈(La Cardonne) 2000년’ 등 2종의 레드와인. “부어라 마셔라 먹걸리…아∼ 고려대학교 막걸리대학교”(고려대의 응원가인 ‘막걸리찬가’ 중)가 ‘와인 대학’으로 체질 개선을 꾀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민족 고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이 대학은 ‘조국을 위해 조국을 등진다’는 도발적 광고문구까지 내보냈다. 다음 달 5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 고려대가 파격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름만 빼고 다 바꿔라”=고려대의 변화는 일단 외형에서 두드러진다.

대학 정문에 서면 1934년 지은 본관 건물(사적 285호)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우 대칭의 고딕양식을 취한 3층 화강석 건물은 위엄 그 자체로 ‘서울의 10대 풍광’ 중 하나로 꼽힌다. 본관 앞으론 유럽식 정원이 펼쳐져 있다. 권위와 낭만의 조화. 여기에 고급과 첨단의 이미지가 더해지고 있다.

본관 옆 ‘LG-포스코 경영관’은 이런 변화의 상징. 물과 숲이 어우러진 건물 앞 휴식공간은 놀이동산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조경을 에버랜드에서 맡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착각인 셈이다.

신라호텔이 실내디자인을 담당한 건물 내부는 21세기 대학 건물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비에 있는 7개의 대형 프로젝션TV에선 전 세계 뉴스를 전하고 있다.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5억 원을 기부해 만든 ‘이명박 라운지’, 학생 얼굴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원형 강의실 등은 외국 대학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지난달 개관한 ‘CJ 인터내셔널 하우스’ 역시 고려대의 자랑. 지하 1층, 지상 6층에 321명의 교수와 학생이 생활할 수 있는 외국인 전용 기숙사인 이곳은 누가 봐도 호텔이다. 음향시설만 2000만 원이 들었다는 DVD 감상실, 방음장치가 돼 있는 피아노 연주실, 벽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회의실, 최고급 헬스장….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이 대학 언론학부 2학년인 김하은(21·여) 씨는 “학교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낸 동문 선배들의 이름이 강의실 의자 등 건물 곳곳에 새겨져 있다”며 “‘와인 고려대’로 변모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막걸리 선배’들의 끈끈한 정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동문들은 올해 2200억 원의 기부금을 고려대에 냈다.

▽“목표는 세계 100대 대학”=외형의 변화가 태풍이라면 내부의 변화는 물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소용돌이치는 지진해일(쓰나미)에 가깝다. 고려대는 국내 대학 처음으로 ‘영어 상용화’를 선언했다. 현재 전체 강의 중 25%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2010년까지 영어 강의는 전체 강의의 50%로 확대된다. ‘고려대로 유학을 간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외국어문학 전공 학생은 의무적으로 한 학기 동안 해당 언어권 대학을 다녀야 한다. 입학생의 20%인 1000명을 매년 외국으로 내보내기 위해 이미 49개국 395개 대학과 학생 교류협정을 마쳤다. 올해만 800여 명의 학생이 ‘글로벌 캠퍼스’를 통해 유학생활을 체험한다.

해외로 나간 학생의 빈자리는 편입생이 아닌 외국 유학생들로 채워진다. 올해 경영대에만 380여 명, 고려대 전체로는 600명의 학생이 유학을 온다.

외국인 교수 채용도 크게 늘릴 계획이다. 심지어 국어국문학과 교수조차 외국인을 채용하겠다는 것이 고려대의 방침. 이 대학 관계자는 “‘글로벌 리더는 글로벌 환경에서 나온다’는 원칙을 실천하는 데 있어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 같은 변화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다. ‘세계 100대 대학 진입.’ 이를 위해 고려대는 이름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기 위한 체질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고려대는 “단과대별로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이 이미 수립돼 있다”며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고 있는 이공대와 의대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면 머지 않은 장래에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대학들이 고려대의 총체적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안암골 호랑이가 날개를 달고 과연 비상(飛上)할 수 있을까.’ 의심과 경계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대는 정작 이런 시선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고려대는 “우리의 경쟁상대는 국내 대학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5년 뒤 고려대는 더 이상 한국의 고려대일 수 없다는 것이다.

“조국을 위해 조국을 등지고 세계무대로 나아가겠다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고려대의 운명만이 아닌 한국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란 어윤대(魚允大) 총장의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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