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한끼밥 퍼주기 정말 힘드네요”… 초등교 배식현장

  • 입력 2005년 4월 25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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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콩 더 주세요.” 22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대방초등학교에서 학부모 급식 배식 체험을 하고 있는 본보 기자에게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잡곡밥의 콩을 더 넣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검은콩 더 주세요.” 22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대방초등학교에서 학부모 급식 배식 체험을 하고 있는 본보 기자에게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잡곡밥의 콩을 더 넣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요즘은 학교에서 급식을 하기 때문에 주부들은 아침마다 도시락 반찬을 뭘로 싸줘야 하나 하는 고민을 덜게 됐다. 월 3만∼5만 원의 급식비를 부담하지만 주부들은 “예전에 비하면 정말 편한 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급식 일손이 부족해 학부모끼리 품앗이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급식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전업 주부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맞벌이의 경우 근무시간이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월차를 내거나 “집안에 급한 일이 있다”고 본의 아니게 거짓말도 하고 일당을 주고 도우미를 대신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을 맡긴 부모 심정에선 선생님 눈치가 보여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본보 교육팀의 이나연 기자가 22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대방초등학교에서 급식 배식 자원봉사 체험을 통해 학교급식 실태를 돌아봤다.》

▽점심시간 짬 내 배식 당번=급식 활동은 4교시인 오전 11시 40분경 2학년 교실이 있는 3층에 학부모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각 학급 앞의 복도에는 급식용 책상 2개가 놓여 있었다.

“국이 뜨거운데 면장갑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자 2학년 ○반 학부모 유지영(29·여) 씨는 앞치마를 꺼내며 이렇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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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배식은 처음이신가요?”(기자)

“맞벌이라 오늘도 못 온다고 담임교사께 말씀드렸었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점심시간에 왔어요.”(유 씨)

유 씨는 그동안 시어머니와 몸이 불편한 시누이에게 배식 당번을 부탁해 왔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었다고 한다. 병원 직원인 유 씨는 점심시간 2시간 전에 달려와 배식을 하고 점심도 거른 채 1시 반경 병원으로 돌아갔다.

3명의 급식 당번 가운데 한 명인 김미영(39·여) 씨는 “오늘은 자원봉사자가 와서 정말 잘됐다”고 반색하면서 “얼마나 자주 오느냐” “한 반에 몇 명씩 오느냐”는 등 꼬치꼬치 캐물었다.

다른 반 학부모인 이모(37·여) 씨는 “지난해까지 직장에 다녀 같은 반 학부모에게 1만5000원을 주고 배식을 부탁했다”며 “월 2회 당번이 돌아와 부탁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7kg 밥통 들고 120m 이동=학부모 봉사자들은 120m 정도 떨어진 다른 건물의 조리실까지 가서 학년별 반별로 밥통과 식판, 식기통 등 7개를 두세 번 왕복해 번갈아 3층 교실까지 날랐다.

한 학급 식사분량이 담긴 7kg가량의 철제 밥통(가로 70cm, 세로 80cm), 뜨거운 국이 담긴 철제 국통 1개, 지름 30cm가량의 반찬이 담긴 스테인리스스틸 반찬 그릇 3개, 식판 등이 담긴 플라스틱통(가로 70cm, 세로 40cm, 높이 30cm) 2개 등이었다.

무거운 통을 들고 교실 앞에 도착할 때는 팔이 떨리고 허리가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시 교육청에선 2학년부터 학생이 배식(자율배식)하라는데 어린 학생들이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아해 했다.

이날 반찬은 김치, 콩나물, 미나리무침, 탕수육, 쇠고기와 오징어를 넣은 국이었다. 학생들은 “콩은 싫으니 빼 달라” “밥을 더 달라”는 등 요구를 많이 했다. 음식을 나르고 떠주는 데에도 거의 1시간이 걸렸다. 밥이 부족해 옆 반과 조리실까지 달려갔다 왔다.

이현휴(8) 군이 “탕수육이 있어 집에서 먹을 때보다 급식이 더 맛있었다”고 말할 땐 흐뭇한 생각도 들었다.

문영호(8) 군의 어머니 김도영(37) 씨도 “아이가 냉장고에 붙여놓은 급식 메뉴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하고 비교적 잘 먹는다”며 “배식 당번을 와 보면 음식의 질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식판을 반납할 때는 남은 음식을 복도나 옷에 흘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반납된 그릇을 조리실로 옮기고 종례가 끝난 교실 청소에 나섰다. 학부모들이 1시 20분경 청소를 마치자 담임교사가 교실에 들러 “수고했다”고 말했다.

▽현장 모르는 행정=서울시교육청은 초등 1, 2학년 급식을 위한 강제할당식 배식 당번에 대한 학부모 민원이 빈발하자 학부모 배식을 금지하고 유급인력을 고용하라고 권고했다. 또 저학년 배식에 5, 6학년을 활용하라는 대안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이 학교는 학부모 총회를 거쳐 배식 당번제, 2학년 학부모 배식을 그대로 실시하기로 했다. 2학년 자율 배식은 학교 여건상 불가능했기 때문. 또 유급인력을 고용하려면 급식비가 거의 2배가 돼 반대가 거셌다.

담임교사는 “학급 31명 가운데 3명이 무료 급식 지원을 받고 있으며 맞벌이 자녀가 18명”이라며 “집에 가면 챙겨 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이승원(李承遠) 교장은 “식당 등 시설만 잘 갖춰져 있으면 1학년도 자율 배식할 수 있다”며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생기는 유급인력 고용 등 배식에 따른 추가 비용은 정부가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자체 식당 갖춘학교 서울 초등교 10%뿐▼

학교급식은 1993년 초등학교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된 뒤 지난해 현재 전국 초중고교의 99%인 1만586개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급식학생은 전체의 92.8%인 723만 명에 달한다.

정부가 직영하는 학교급식이 83.1%, 외부업체에 운영을 맡기는 위탁급식은 16.9%. 서울시의 경우 초등학교 554곳 가운데 사립 5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영체제. 중고교의 직영은 24곳이다.

위탁급식에서 흔히 위생이나 급식의 질의 문제가 생겨 학부모는 직영급식을 원하지만 조리실과 식당 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학교급식을 위한 자체 식당 등의 여건은 대도시일수록 낙후된 편이다. 전국 초등학교 가운데 72%는 식당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서울은 10%에 불과하다. 학부모 배식의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 직영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매년 100억 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며 “지방은 학생 자연감소 등으로 빈 교실이 생기고 식당을 만들기도 수월하지만 서울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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