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공부중]“내 아이 내가 배워 내가 가르친다”

  • 입력 2005년 3월 21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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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학원에만 보낼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배워서 자녀 교육에 활용하려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문화센터에서 열린 ‘자녀지도 영어반’에 참가한 엄마들이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아이들을 학원에만 보낼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배워서 자녀 교육에 활용하려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문화센터에서 열린 ‘자녀지도 영어반’에 참가한 엄마들이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749×36을 다양하게 변형해 가로 셈으로 풀어봅시다. 749를 750으로 만들고 36을 4×9로 분리하면 750×4×9-36으로 바꿀 수 있고, 750을 다시 25×10×3으로 쪼개보면….”

기자가 서울 양천구 목동 CBS교육문화센터의 ‘자녀 초등수학 지도법’ 강의실을 찾았을 때 초등 3, 4학년 수학을 배우는 30, 40대 주부들은 강사의 설명을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강사 염주완(38·여) 씨는 “교과서에서 가로 셈으로 다양하게 푸는 방법을 소개한 것은 기계적인 세로 셈 계산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라며 “아이들이 숫자를 계산하기 편리한 묶음으로 나누고 합치며 ‘놀면서’ 숫자와 친해지게 해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바로 옆 강의실에서도 같은 또래의 엄마 9명이 ‘자녀지도 영어반’에서 영어를 배우느라 한창이었다.

갈수록 사교육비 부담이 늘면서 ‘늦깎이 공부’에 나서는 엄마들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은 여성의 학력 수준이 높아 옛날에 배운 내용을 조금만 다시 배우면 직접 자녀를 가르칠 수도 있고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아이 학원비 아끼자”

송진희(41·서울 서초구 반포동) 씨는 대입에서 글쓰기와 독서가 중요해진다는 말을 듣고 자녀를 보낼 학원을 알아보다 자신이 직접 배우기로 결심했다.

초등학생은 월 20만 원, 중학생은 월 25만 원으로 아이 둘을 보내려면 교재비까지 50만 원 이상 들기 때문이다.

송 씨는 “딸에게 6개월 정도 글쓰기를 직접 가르쳤는데 지난해 말 교내 ‘에너지절약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며 “지금은 나를 ‘선생님’처럼 대한다”고 말했다.

조미영(37·서울 관악구 봉천동) 씨는 6학년 아들을 몇 년간 학원에 보내고 학습지를 시켜봤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학원은 문제집을 몇 권 풀었느냐 하는 ‘권수 떼기’와 문제 푸는 테크닉에만 관심을 쏟는 것을 보고 1년 전부터 직접 초등 수학을 배워 가르치고 있다. 조 씨는 “처음엔 성적이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3개월 만에 학원과 학습지를 끊었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수학을 좋아한 김모(43·서울 성북구 정릉동) 씨도 금요일마다 동아문화센터에서 중고교 수학을 배워 고1 딸에게 주 2회 수학을 가르친다. 딸의 수학 성적은 상위권으로 대학에 갈 때까지 직접 가르칠 예정이다.

김 씨는 “중고교 수학이 만만치 않지만 조금 노력하면 고교 과정도 가르칠 수 있다”며 “오히려 학원이 미덥지 못하다”고 말했다.

자녀의 ‘숙제 도우미’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부모들도 많다. 학원도 내용을 알아야 제대로 고를 수 있다.

박현영(36·서울 양천구 목동) 씨는 영어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숙제를 건성으로 하는데도 제대로 관리를 해주지 못했다. 숙제를 도와주다 모르는 내용이 나올까봐 은근히 걱정이 돼 본격 적으로 공부에 나섰다.

김민선(41·여) 씨도 지난해 여름 초등 3, 6학년인 자녀와 해외연수를 가던 비행기에서 “담요 하나 더 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해 민망했다고 한다. 김 씨는 “외국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의지해 의사소통을 할 때는 자존심이 상했다”며 “영어를 배워둬야 해외 연수나 유학을 보낼 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공부해야… 30, 40대 주부들 늦깎이 공부

서울 양천구 신서초등학교 4학년 유병국(10) 군은 학원 숙제를 할 때면 거실에 방석 두 개를 가져다 놓고 “엄마, 영어 공부시간!”이라며 소리친다.

지난해부터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는 어머니 이명숙(41) 씨가 “학원 숙제를 할 때 엄마를 꼭 불러서 함께 공부하자”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김정옥(42) 씨는 5학년 딸에게 9개월 정도 수학을 가르친 결과 문제풀이 방식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제7차 교육과정은 사고력, 활동 중심이어서 수학 교과서 단원마다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라는 문제가 나온다”며 “그러나 학교 교사는 이를 아예 다루지도 않아 내가 직접 배워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백승원(7·서울 강동구 암사동) 군도 어머니(31)가 직접 독서지도를 하면서 책에 취미를 붙였다. 학습지 교사가 가르칠 때는 몸을 비비꼬며 지겨워했지만 지금은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엄마 지도’ 효과… 최고의 교사 vs 주입식 우려

전문가들은 엄마처럼 자녀에게 애정을 쏟는 교사는 없는 만큼 전문성만 갖춘다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양대 정진곤(鄭鎭坤·교육학) 교수는 “고2 아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면서 아이의 지적 능력과 사고방식을 정확히 알게 됐다”며 “부모가 실력과 전문성을 갖추면 학원 강사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서정화(徐廷華·교육학) 교수는 “요즘은 학부모의 교육수준이 높아져 직접 가르칠 수는 있지만 배경 원리 등을 충분히 알지 못할 경우 주입식 교육이 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화가 치밀어도 참아야 하고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한다. 웬만한 노력과 희생이 없으면 안 된다.

이민경(40·여) 씨는 “내가 공부를 가르치면서부터 아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엄마, 약속 없어요?’라고 묻기도 한다”며 “공부만 강조하면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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