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아 놀자]놀이수학 활용법

  • 입력 2005년 3월 7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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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숫자를 세면서 하나씩 끼워보자.” 요즘 3, 4세부터 교구를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수학 개념을 익히는 놀이수학이 인기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담리즈 놀이수학 교실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숫자를 배우고 있다. 박영대 기자
“자, 숫자를 세면서 하나씩 끼워보자.” 요즘 3, 4세부터 교구를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수학 개념을 익히는 놀이수학이 인기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담리즈 놀이수학 교실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숫자를 배우고 있다. 박영대 기자
《3년 전부터 ‘아담리즈놀이수학’에 다닌 정성훈(5·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군. 혼자서 놀 때도 사물을 색깔, 크기, 모양에 따라 곧잘 분류한다. 또 귤이나 사탕을 달라고 말할 때는 “몇 개 주세요”라며 숫자를 꼭 찍어서 말한다. 학원에 다녀온 뒤엔

사각형 입체들로 기차를 만들고 “이건 직사각형 기차야”라고 설명해준다.

이 학원에서 만난 어머니 이영민(34) 씨는 “아이가 놀이수학을 통해 어렵게 느끼지 않으면서 수학의 기본 개념을 익히는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수학을 ‘지긋지긋하게’, ‘어렵고’, ‘따분한’ 과목으로 기억하는 젊은 엄마들. 이들에게 놀이수학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수학 때문에 받았던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다.》

○놀이수학의 ‘원조’

놀이와 학습의 중간쯤인 가베(은물)와 오르다가 대표적.

가베란 나무를 깎아 정육면체로 만든 교구 등으로 구성된 놀이 도구다. 이를 이용해 선 면 도형을 만들면 수학적 개념, 특히 공간 지각 능력이 향상된다고 알려져 있다. 1∼10단계가 있어 24개월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단계별로 배울 수 있다. 1896년 독일의 프뢰벨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한국프뢰벨의 ‘은물’을 포함해 한솔, 기탄교육 등에서 교구를 만들어 판다.

이상민(36·여·서울 강남구 청담동)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에게 4세 때부터 은물을 시켰는데 창의력 향상에는 도움이 됐지만 수 개념 교육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오르다는 ‘지혜의 빛’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의 교구.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움직이는 게임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수, 연산, 유추 등 수학의 기본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홍익대 박경미(수학교육) 교수는 오르다의 효과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박 교수는 “5세 때 덧셈만 할 수 있던 아이가 곱셈을 해야 게임에서 유리하니까 스스로 구구단을 외웠다”며 “수학에 친숙하고 취미를 갖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놀이수학 강조한 학원과 학습지 확산

최근 확산되는 ‘놀이수학’은 교구를 활용하는 활동 수학으로 학교 수학과의 직접성 연계성을 강화했다.

씨매쓰, 조이매스창의력수학교실, 아담리즈놀이수학 등이 대표적이다.

씨매쓰 양천점 김필준 원장은 “집합을 가르칠 때도 아이들에게 스스로 특정 기준을 만들도록 하고 그 기준에 맞는 사물을 찾도록 한다”며 “재미가 있어야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구멍이 2개인 단추’(기준)를 스스로 정하고 이에 따라 단추를 분류하도록 한다는 것.

하지만 놀이수학이 사고력을 강조하면서 아이의 지적 발달 단계를 앞서간다는 지적도 많다. 정성이(33·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주부는 “주위에 3, 4세에 놀이수학을 시작해 2년 정도 재미있게 배우다가 이후 지겨워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아이의 지적 능력보다 선행한 내용이 많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학원에서 4, 5세용이라고 하면 5, 6세에 시키는 게 적절하다는 것.

학습지 업체들도 놀이수학 시장에 본격 뛰어들고 있다. 웅진의 씽크빅과 대교의 사고력수학도 교구를 이용해 사고력과 창의력 향상에 중점을 둔다. 학부모들은 수학의 양축을 사고력과 계산력으로 보기 때문에 계산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구몬수학, 예스셈, 재능수학 등을 병행해 가르치는 경우도 많다.

교육방송(EBS)이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방송하는 ‘EBS 무릎학교’에서는 주 1회 수학 교수가 나와 실생활과 관련된 수학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계와 활용 유의점

가베와 오르다의 경우 수학 교육적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서울교대 곽노의(유아·특수교육) 교수는 “가베는 사고력 창의력 수학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훌륭한 놀잇감”이라며 “문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놀면서 원리를 깨우쳐야 효과가 있는데 부모들이 교육에 치우치고 학원들도 아이의 지적 능력보다 상위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성균관대 강옥기(수학교육) 교수는 “가베와 오르다의 장점은 다른 장난감보다 나중에 수학을 공부할 때 친근감을 더 느낄 수 있다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유명한 아동학자인 피아제는 덧셈과 뺄셈은 6, 7세 정도에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며 “어릴 때 수준 높은 수학 개념을 가르치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제 나이가 돼 수학을 시작하는 아이들과 미리 수학을 접한 아이들의 수학적 잠재력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오르다, 주판은 연산 능력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연산이 수학의 가장 기초적인 영역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홍익대 박 교수는 “저학년 때 연산을 잘하는 자녀를 수학 영재로 오판해 무리하게 교육을 시키는 부모도 있다”며 “고난이도 수학에서는 사고력이 중요하지 연산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놀이수학’의 경우 교육 과정이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는지, 그리고 프로그램이 제대로 검증을 받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학교육을 연구하는 나온교육연구소 박영훈 대표는 “사고력을 강조하는 놀이수학 가운데 상당수는 학교에서는 다루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을 암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숫자놀이는 구슬 단추로… 용돈 줘 수 개념 터득▼

어린 자녀를 둔 20, 30대 엄마들은 ‘활동수학’이나 ‘놀이수학’이 표방하는 사고력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세대다.

전문가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엄마들도 얼마든지 특별한 교구 없이 연산 공간지각 유추 등 수학의 영역별 기초를 재미있고 쉽게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자녀의 지적 발달 단계를 고려하고 △교육이 아닌 놀이를 강조하며 △아이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연산의 경우 자녀가 4, 5세라면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슬, 단추, 바둑돌 등이 훌륭한 교구가 된다. 몇 개씩 나눠 보고 합쳐보거나 혹은 손수건으로 가리는 등으로 수 개념을 익히고 연산도 가르칠 수 있다. 6, 7세가 되면 물건을 살 때 아이에게 내야 할 돈을 계산해 보게 하거나 용돈을 줘 수 개념을 익히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간지각 영역은 레고, 돌멩이 등으로 쌓아 보고 부숴 보면서 자연스레 감각을 기를 수 있다. 퍼즐과 같은 조각 맞추기 놀이도 큰 도움이 된다고.

이때 엄마가 “이건 저것보다 넓지?”와 같이 주입식으로 공간 개념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가 이리저리 만져보고 생각하면서 혼자서 깨우치도록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

가베 등의 교구는 획일적인 반면, 집에 있는 물건은 다양해 아이들이 더 흥미를 갖기 쉽다는 주장도 있다.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선 단순한 블록, 나무토막, 돌 등을 가지고 놀게 하는 게 좋다. 아이들은 자동차 장난감을 보면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지만 밋밋한 나무토막을 보면 ‘넌 차야, 근데 그러려면 여기에 바퀴가 있어야 하는데’ 등으로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것.

서울교대 박만구(수학교육) 교수는 “수학을 가르쳐보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더 싫어하게 된다”며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 엄마의 욕심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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