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규형]대학원도 너무 많다

  • 입력 2004년 12월 30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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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21세기 문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수준 높은 정신문화의 진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러한 것을 이뤄내는 데에 대학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대학은 과학기술과 정신문화를 창출하는 주체인 동시에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들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잘 안 돼 있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대리논문 성행할 만큼 부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대학교 구조개혁안을 보고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을 받았고, 만시지탄이지만 다행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대학의 난립과 인구 감소로 이미 대학 정원이 대학 지원자보다 더 많아진 상태이고 그에 따른 일부 대학의 부실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9년까지 358개 대학 전문대 중 87곳을 없애는 동시에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고 교수 1명당 학생수를 줄인다는 계획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교육부의 이번 발표로 그동안 계속 논의돼 왔지만 지지부진하던 대학 간 통폐합도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쉬운 점은 인구학만 제대로 숙지했어도 예측할 수 있었을 대학 정원과 입시생 간 비율의 불균형을 무시하고 대학이 무분별하게 난립하도록 그동안 교육부가 일조했다는 점이다. 1996년에 대학, 대학원 설립기준이 완화되면서 대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질적 향상은 도외시됐고 정원 미달과 교육 부실이라는 급박한 사태가 나타났다. 대학을 세우기는 쉬워도 통폐합하기는 무척 어렵고 많은 후유증을 낳을 수 있기에 대학 신설은 극도로 신중을 기했어야 할 일이다.

이번 발표를 계기로 필자는 대학원 부실화에 대한 대책을 아울러 촉구하고 싶다. 대학원 역시 난립해 있고 질적으로도 위험수위에 와 있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약해지고 정원 채우기에 급급한 것이 대학원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각보다 심각해서 세칭 일류대 일반대학원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우수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기피하는 세태에 더해 대학원 과정과 정원이 너무 많아서 부실화가 이미 도를 넘어선 상태다. 무턱대고 대학원 과정을 만들어 편하게 지내려는 교수들의 이기심 또한 이러한 사태를 낳은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것이 대학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특수대학원은 학생들의 학위 취득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실하다는 게 대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특수대학원 졸업자들을 위한 대리논문 작성이 성행하고 있다는 최근 보도는 대학원 부실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미국의 무수히 많은 대학 중에 대학원 과정, 특히 박사과정을 개설한 대학은 극히 일부분이다. 예를 들어 오하이오 주의 경우 주내에 역사학과를 개설한 대학은 수십 개가 넘지만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곳은 7개에 불과했고, 그나마 근년에 주정부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를 2개로 줄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5개 대학도 박사학위를 수여할 만한 역량이 충분하지만 시장수급 상황과 졸업생들의 장래를 고려해 가장 경쟁력 있는 두 곳만 살려낸 것이다. 대학원 교육이 가장 수준 높게 이뤄진다는 미국에서조차 이러한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원의 내실화를 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부실한 대학원 교육을 방치할 수는 없다.

▼대학 이어 구조조정 불가피▼

대학 구조 개선에 있어 최대 문제 중 하나는 재정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학생수 감소와 교원수 증가라는 구조 개선은 재정을 악화시키는 과제다. 재정 문제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대학과 대학원은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어야지 누구나 쉽게 들어와서 쉽게 졸업하는 곳이 돼서는 안 된다. 대학과 대학원이 제구실을 못할 때 우리의 미래가 암담하기 때문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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