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04 취업시장]경쟁률 100대1은 보통…‘묻지마 지원’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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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취업시장은 한겨울이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 졸업생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기업들은 이를 받아 줄 여력이 별로 없었다.

입사경쟁률은 평균 100 대 1을 훌쩍 넘어섰고 해외 유학파를 비롯한 우수 인력들도 줄줄이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런 가운데 ‘일단 합격하고 보자’는 식의 ‘묻지 마 지원’이 성행해 기업과 지원자 모두가 손해를 보는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2004년 취업시장에 나타난 특징을 정리해 본다.

○입사경쟁률, 100 대 1을 넘어서다

극심한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올해 입사경쟁률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온라인 취업포털인 인크루트(www.in-cruit.com)에 따르면 올 하반기(7∼12월) 신입·경력 사원을 뽑은 57개 국내 주요 기업의 입사경쟁률은 평균 101 대 1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하반기 평균 경쟁률(75 대 1)보다 35% 높아진 것이다.

학력 및 연령 제한을 없앤 수출보험공사는 13명 모집에 3133명이 지원해 24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KTF는 50명 모집에 8000여 명이 지원해 작년 하반기(130 대 1)보다 경쟁률이 23% 올라갔다.

대한체육회는 6명 채용에 4673명이 몰려 779 대 1을 기록해 작년도 한국언론재단의 최고경쟁률(728 대 1)을 넘어섰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를 비롯해 공인회계사, 경영학석사(MBA) 졸업자 등 우수 인력도 치열한 취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제일은행 지원자 중에는 공인회계사(66명), 미국 공인회계사(55명) 등 전문 자격증 취득자가 대거 포함됐다. 토익 900점 이상자가 866명, MBA를 포함한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도 171명이나 됐다.

○기업간 양극화 현상 심화

올해는 채용시장의 극과 극 현상이 두드러졌다. 온라인 취업포털 잡링크(www.joblink.co.kr)에 따르면 삼성 LG SK 한화 등 상위 20대 그룹은 작년보다 15% 늘어난 3만8800여 명을 뽑았다.

174개 상장·등록 기업의 채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155곳이 작년보다 18% 늘어난 2만4393명을 뽑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기업들이 경력직 위주 채용으로 발생한 인력구조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기업도 상반기(1∼6월)에만 15개 기업에서 1만7000여 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선발인원을 약 10% 줄여 기업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

○해외 취업 및 공무원 선호도 높아져

국내에서 취업의 길이 보이지 않자 해외로 눈을 돌리는 지원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1998년 6717명에 불과했던 해외 취업 희망자가 2002년 7299명, 2003년 1만4481명으로 늘어났고 올해(1∼10월)는 2만4296명으로 급증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상대적으로 직장안정성이 높은 공무원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해마다 10∼20% 늘고 있으며 올해는 24만5000여 명이 응시했다. 국가직 7급 공채 필기시험 경쟁률은 대기업보다 높은 136 대 1을 기록할 정도였다.

○인성 및 적성 검사 비중 높아져

기업들이 서류전형과 면접, 신체검사 등을 통한 획일적인 채용 방식에서 벗어나 인성·적성검사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지원자들의 대학시절 학점과 영어점수 등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인성·적성검사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졌다. 시험 성적보다는 입사 후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 업무 능력을 키우기 위한 기초적 소양을 갖췄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크루트가 상장·등록기업 237곳을 조사한 결과 10곳 가운데 8곳이 ‘인성·적성검사 결과가 당락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삼성그룹은 올해 그룹 공채 때 필기시험 대신 인성·적성검사(SSAT)를 실시했다.

또 영어 면접과 프레젠테이션 면접, 장기자랑 면접 등 면접 방식도 아주 다양해졌다.

○‘묻지 마 지원’ 심각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최근 5년간 이력서를 1만4610회나 낸 지원자도 있었다. 이는 취업이 너무 어려워 일단 아무 곳에나 들어가자는 생각에 마구잡이로 지원서를 냈음을 뜻한다.

이런 ‘묻지 마 식’ 지원자는 입사 후에도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이 30%를 넘어서 회사와 지원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는 “내년도 취업 전망도 불투명해 내년에도 입사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숫자로 본 올해 취업▼

‘대학 마지막 학기인 작년 9월부터 쓴 입사원서 60개 이상. 참석한 취업설명회 20여 회. 점수를 올리기 위해 매달 토익시험. 노동부와 잡코리아 등 취업관련 사이트 수시로 뒤지기….’

올해 중앙대를 졸업한 차모 씨(26)의 한 해는 힘겨웠다. 1년 가까이 발버둥을 쳤지만 면접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차 씨는 최근 한 중소기업 인턴자리를 간신히 얻었다. 내년 상반기 재계약을 앞두고 있어 아직 정착했다는 느낌이 없다.

22일 온라인 취업포털 잡링크(www.joblink.co.kr)에 따르면 올해 2월 대학졸업자는 10명 중 6명, 내년 2월 졸업예정자는 10명 중 2명만이 취업에 성공했다.

올해 2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2271명을 조사한 결과 직장을 얻은 구직자는 전체의 64.5%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이 43.1%로 가장 많았고 △벤처기업 25.7% △대기업 14% △외국계 기업 10.7% △공기업 6.5% 등이 뒤를 이었다.

취업자의 37.4%는 비(非)정규직이어서 취업의 질(質)이 좋지 않았다.

28%는 한 번 이상 직장을 옮겼던 것으로 조사돼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식의 취업 부작용을 보여줬다.

취업할 때까지 입사지원서를 쓴 횟수는 평균 26.3회였고 40번 이상도 29.2%나 됐다. 10회 이상 면접을 본 응답자 역시 23.1%로 높았다.

2월 졸업예정자로 조사에 응한 1894명 가운데에서는 취업자 비율이 21.6%에 그쳤다.

내년 상반기(1∼6월) 신규채용에 나서는 기업은 20%에 불과해 취업난은 계속될 전망이다.

채용전문기업인 코리아리크루트(www.recruit.co.kr)가 국내 271개 주요기업을 조사한 결과 내년 상반기에 신입사원을 뽑을 예정인 기업은 53개사(19.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채용인원은 총 2158명, 기업당 채용인원은 40여 명에 불과해 취업경쟁률은 매우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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