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달라진 送年 풍속도]싸고 짧게… 짠돌이 망년회

  • 입력 2004년 12월 17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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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대학동창 모임-지출 6만5000원.’

‘20일 부서 송년회-1차만 참석하고 빠지기.’

‘22일 동종업계 동호회 모임-불참.’

회사원 곽동원 씨(31·서울 광진구)는 올해부터 ‘송년회 가계부’를 쓰기로 했다. 지난해 10여 차례나 송년회에 끌려 다니다 보니 용돈은 바닥나고 몸은 녹초가 됐다. 그래서 올해에는 모임 참석 횟수와 비용을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이기로 목표를 정했다.

회사원 서모 씨(29·여·서울 서초구)는 올해는 친구들과의 송년회를 구민회관 등에서 하는 무료 영화를 관람하고 각종 할인쿠폰을 모아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회사원 정모 씨(33·경기 평택시)도 “고교 동창들과의 송년회를 올해에는 아예 점심때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돈을 아끼자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장기 불황은 이렇게 서민들의 송년회 분위기마저 바꿨다. ‘참석은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고, 지출은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이자’는 송년회의 신(新)풍속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송년회 지출을 막기 위한 서민들의 노력은 ‘비슷한 모임 합쳐서 하기’ ‘1, 2차를 한곳에서 해결하기’ ‘신용카드나 법인카드 지참 안 하기’ ‘점심시간 활용하기’ 등 여러 가지다.

기업 차원에서도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송년회는 이미 금기(禁忌)가 됐다. 회사마다 불황에 대한 심리적 위축감으로 사원들이 연말 모임을 자발적으로 줄이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

회사 자체적으로 야간산행 등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송년회 비용을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하는 이색 송년회가 유행하기도 한다.

시중은행 직원인 이모 씨(28·여·서울 마포구)는 “최근 구내식당에서 회사 송년회를 열었는데 사원들끼리 ‘벼룩시장’을 열고 새해 소망을 발표하기도 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송년회가 단출해지면서 평소 연말이면 특수(特需)를 누리던 유흥업소는 예약 실적이 예년에 미치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다. 호텔 등 고급음식점과 송년회 일정을 대행하는 이벤트 회사의 불황은 상대적으로 더 깊다.

서울시내 한 유명 호텔의 식당은 송년회 예약 건수가 지난해의 60∼70%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한주류공업협회 관계자는 “송년회 자제 움직임 등으로 올해 말의 경우 위스키(양주) 출고량이 작년에 비해 15∼20%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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