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열심히 배우는 아빠가 자랑스럽대요”

  • 입력 2004년 12월 10일 20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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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이 있을까요.”(교사)

“선생님. 적성이 아닐까요.” “제 생각엔 소질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학생들)

지난 일요일(5일) 오후 인천 제물포고교의 한 교실. 나이가 지긋한 학생 20여명이 ‘시민윤리’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은 제물포고교 부설 방송통신고교 2학년생들로 40대 이상이 주축을 이룬다.

학생들은 평소 라디오와 인터넷으로 수업을 받다가, 한 달에 두 번 학교에 나와 출석수업을 받는다.

이 학교 김기룡 교감(47)은 “학창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배움을 중단한 분들이 용기를 내 고등학교 과정을 다니고 있다”며 “수업 분위기가 일반 학생들보다 더 진지해 배움에 대한 열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최종학력이 중학교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방송통신고에 다니는 사실을 숨겼죠.”

차기 학생회장직을 맡을 원용휘씨(44·사업)가 늦깎이 배움에 뛰어 든 자신의 사연을 얘기했다.

“가정이 어려워 중학교만 마친 뒤 경남에 있는 한 조선소에서 배관 기능공으로 일했어요. 중학교 학력으로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 개인 사업에 뛰어들었죠.”

원씨는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좀 더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 2002년 직업모집광고를 내기 위해 신문을 뒤적이던 중 방송통신고 모집광고를 접했다.

“사업을 하면서 부(富)도 쌓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었죠. 그래서 용기를 내 학교에 등록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연을 안 아이들도 이제는 ‘용기 있는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얘기합니다.”

해병대 2사단에 근무하는 윤관영 상사(48)도 지원원서를 들고 교문 앞에서 서너 시간을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 학교에 다니게 됐다.

“학력이 높은 병사를 대할 때마다 좀 더 배워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 3학년인 아들에게 수학, 영어를 배우면서 부자간의 정도 돈독해졌어요.”

제물포고 방송통신고는 1975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3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번 2005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대학진학을 희망한 20여 명 중 현재까지 16명이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이 학교는 15일부터 내년 3월 30일까지 2005학년도 고교과정 신입생을 모집한다. 자격은 중학교 졸업자나 예정자, 동등한 학력소지자다. 고교 중퇴자도 입학할 수 있다. 032-770-4741∼2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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